샤넬 할머니는 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사연이 드러나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샤넬 할머니 최화영의 삶은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들이 왜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은 의아했다.
샤넬 할머니 최화영;
다시 태어나면 준하 어머니로 태어날께
죽음은 서글픔과 함께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샤넬 할머니는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려던 준하는 공항에서 형사들에 의해 취조실로 가야만 했다. 뒤늦게 샤넬 할머니 죽음을 알게 된 혜자는 자신이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못했다고 한스러워 한다.
샤넬 할머니의 죽음이 알려진 후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효도원을 운영하며 노인들에게 사기를 치던 희원은 보험금이 얼마인지가 궁금했다. 사망 보험금은 1억 정도 된다는 사실에 아쉬워한다. 자신들이 받을 수도 있는 보험금이었는데 받지 못했다는 심정이다.
효도원이 하던 긍정적 모습은 노인들이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 외에는 모두 사기를 치기 위함이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은 자신들이 사기를 당하는 줄 알면서도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자신들을 받아줄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준하는 경찰서에서 샤넬 할머니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가지 전날까지 상황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공항까지 배웅해주던 모습. 그리고 상비약을 사서 주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던 모습 속에 아련함이 가득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울고 있었던 샤넬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준하를 더욱 아프게 했다. 단순하게 조사만 받고 끝날 것 같았던 준하는 구속이 되었다. 그 이유는 샤넬 할머니가 사망 보험을 들었고, 그 수혜자로 아들이 아닌 준하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준하가 악의적으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샤넬 할머니를 죽였다고 판단했다. 최소한 보험 사기를 치려고 했다고 확신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 입길에 오르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작은 동네에서 준하 소식은 삽시간에 모두에게 알려졌다.
준하가 악의적으로 보험 사기를 쳤다는 소문이 퍼지며 비난도 함께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혜자는 자신을 자책했다. 마지막으로 머리까지 해줬는데 자신은 그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만나러 왔을 때 자신이 집에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 준하가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잡혀 있다는 소식까지 더해졌다. 식음까지 전폐했던 혜자는 억지로 밥을 먹고 사방을 다니며 준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효자원의 준하 선배라는 희원은 그저 사기꾼일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까지 등을 돌린 상태에서 혜자의 노력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힘든 듯했다.
준하의 평소 성품은 그를 구하는 이유가 되었다. 효자원에 다니던 동네 노인들이 경찰서로 모이기 시작했다. 혜자 혼자 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샤넬 할머니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준하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신이 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준하씨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적었다.
경찰 조사에 의해 드러난 사실은 처참했다. 샤넬 할머니는 자식이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들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준하의 도움으로 아들이 사는 아파트를 찾은 샤넬 할머니는 문전 박대나 다름 없는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갓난아기 때 보고 처음 보는 손자가 너무 귀여운 샤넬 할머니에게 아들이 한 행동은 냉정했다. 집으로 들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아들은 가족과 단절을 선택했다. 그저 잘 사시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가는 아들. 그런 아들을 만나고 돌아선 샤넬 할머니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자신이 꿈꾸었던 만남을 거짓으로 준하에게 이야기를 하며 주말에 아들 가족과 식사를 하기로 했다는 샤넬 할머니는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했다. 집까지 팔아 아들에게 줬던 샤넬 할머니는 그렇게 아들에게 버림 받은 채 최후를 맞았다. 아무도 없는 장례식 장을 지킨 것은 준하와 노인들이었다.
화장터로 가는 날 뒤늦게 나타난 아들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마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는 아들에게 분노한 준하. 손주에게 마지막으로 장난감을 사주고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던 샤넬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들을 위한 선택을 했다. 준하 할머니가 그랬듯 말이다.
버려지는 노인의 수는 늘어나고 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문화는 사라져 간다. 이를 강요할 수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주기에 바쁘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주고 빈털털이가 된 채 거리로 내몰린 부모의 삶은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노인 문제가 <눈이 부시게>의 주제다. 25살 혜자가 70대 혜자가 된 이유 역시 이를 통해 역지사지로 노인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점에서 죽고 나서야 알게 된 샤넬 할머니 최화영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와 달라진 문화 속에서 더딘 부모 세대들의 소외와 박탈감이 만든 외로움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신을 거부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 것이다. 허탈하게 준하 앞에서 밝은 척 행동하던 최화영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미래이고 부모 세대의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준하는 샤넬 할머니를 통해 자신의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개차반 같은 아들이라도 품을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고민을 준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준하에게 찾아온 위기는 결국 이제 3회 남은 <눈이 부시게>를 극적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남은 세 번의 이야기는 혜자를 다시 25살로 돌려 놓을 수 있을까?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