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사가 될 수도 있었던 하늘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박성순이 자신이 아닌 해원을 추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각한 배신감을 느꼈다. 지난 1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충분히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아닌 해원을 정교사로 추천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성순이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점수가 가장 높았던 하늘이 정교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6년 동안 고생한 해원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사정들 속에서 하늘이 아닌 해원에 대한 선택은 당시에는 당연했다.
대치고를 떠난 해원은 다른 사립학교에 최종 합격되었다. 합격 소식을 알린 해원의 문자를 보고 행복한 눈물을 보이는 하늘은 자신의 일처럼 즐겁고 행복했다. 해원은 그렇게 정교사로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늘은 비록 정교사가 되지 못했지만 대치고에서 2년 차 교사로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외삼촌인 문수호 교무부장은 교감으로 승진했다. 그러면서 인사이동이 급격하게 이뤄지는 이유가 생겼다. 매년 희망 부서를 선택하고 재배정을 하는 과정을 거치는 학기 전의 모습은 정치력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기도 한다. 교무부장 자리를 두고 벌이는 교사들의 대결 구도도 심화되기 시작한다.
교무부장은 교사들 중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이자 교감으로 승진하는 전 단계이기도 하다. 3학년 부장인 송영태와 창의체험부장인 한재희까지 교장을 찾아 교무부장 자리를 언급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급격하게 인사이동이 이뤄지게 된 것은 이사장이 교장의 연임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정교사 채용 과정에서 낙하산을 심으려던 노력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이사장은 이를 불쾌하게 여겼고, 자신의 요구보다 교사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교장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연쇄이동을 하듯 교무부장이 교감이 되었고,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 대한 갈구도 커졌다.
교장은 박성순에게 교무부장 자리를 제안했다. 교장으로 있는 동안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였다. 하지만 성순은 이제 더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며 느낀 상황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위해 말 그대로 온 몸을 불태웠던 그 시간들 동안 정작 자신의 가족은 돌보지 못했다. 더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성순은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 했다. 그가 국숫집에서 우연하게 하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늘은 마음 한쪽에 성순에 대한 불신 아닌 불신을 키우게 되었다. 왜 자신이 아닌 해원을 지지했을까? 하는 막연한 아쉬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숫집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킨집 배달을 하는 아이로 인한 사고였다. 하지만 국숫집 엄마는 치료비도 받지 않고, 신고도 하지 않으려 한다.
딱한 처지의 아이를 위한 배려였지만, 하늘은 답답했다. 이제 고 3이 되는 그 아이는 태연하다. 국숫집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밥까지 챙겨 먹인다. 알고봤더니 그 아니도 대치고 학생이었다. 이제 3학년이 되는 그 아이는 인생을 이미 포기했다. 자신의 이름이 황보통이라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자괴감도 품고 있다.
작고 낡은 원룸에서 사는 보통은 우연하게 알게 된 하늘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1학년 담임이었던 박성순 선생에 대한 언급을 하다 얼굴을 붉히는 일까지 일었다. 보통은 박 선생이 앞뒤가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하늘은 성순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 맞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작은 불신은 보통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씻겨 나갔다. 자신이 경험한 성순은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순이 보통이 경찰서에 있던 그 시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따로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말이다. 하지만 보통은 교사에 대한 불신을 이상하게 풀어내려 한다.
학교에서 잘못해서 올린 교사 언급과정에서 기간제 교사 이름이 노출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하필 보통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기간제 교사라는 사실을 말이다. 공교롭게 담임교사가 하늘이 되었다는 사실에 보통이 한 행동은 불안을 가중시킨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정에 충실하려던 성순을 돌려 세운 것은 하늘의 과거다. 진학부 회식을 하려던 날 일이 생겨 갈 수 없게 된 하늘과 함께 찾은 곳은 국숫집이었다. 새로운 집기들이 들어와 도와야 하는 상황에서 진학부 선생들은 국숫집을 식사 자리로 선택했으니 말이다.
그곳에서 국숫집 사장님과 인연이 드러났다. 단골손님이 가게 밖에서 하는 이야기를 성순은 우연하게 듣게 되었다. 기간제 교사였던 국숫집 사장 남편은 하늘을 구하다 사망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주마등처럼 흐르는 시간들은 성순은 아프게 했다.
하늘이 왜 그렇게 최선을 다해 정교사가 되려 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늘 책상에 올려진 그 사진 속 교사가 바로 하늘을 살린 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창체부 한재희 교사의 읍소가 상황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정치와는 전혀 관심도 없는 진학부 교사들을 노린 한 교사의 읍소는 성순이 교무부장이 될 수 없게 만들었다. 교무부장을 선택하게 되면 한 교사가 진학부에 들어가 흔들어버리겠다는 항명과 같은 대치극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성순의 선택은 진학부장으로 1년 더 근무하는 것이었다.
하늘을 지키고 그가 정교사로 자리를 잡도록 돕는 것. 그것이 어쩌면 성순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선배로서 정도를 걷는 후배를 위해 커다란 우산이 되어주려는 성순. 그렇게 그들의 진학반은 다시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방학 중 하늘을 찾아온 아이들과 소란스러운 한때를 보내고,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지해원 선생님 소식 들었죠. 내가 보기엔 선생님이 이제 다 왔어요. 여기서 1년만 더 버텨요. 내가 진학부에서 딱 버티고 있어 줄테니까"한 위로이자 든든한 말은 하늘은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교무부장이었던 문수호가 방황하던 해원을 바로잡아 주었다. 그렇게 교사의 길을 걷게 한 문수호처럼 하늘도 보통을 바로 잡아 줄 수 있을까? 그 과정을 통해 다시 한번 하늘은 교사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교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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