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왜 항상 허름한 노동자의 가방 속에서 등장하는가? 그것도 미처 먹지도 못한 채 남겨진 유산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라면은 서글픔으로 각인되어간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소중한 아들들이 그렇게 다시 위험의 위주화 속에 희생을 당해야 했다. 노동의 신성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노동이 신성한 가치가 되지 못하며 사회는 더욱 부도덕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효율성을 언급하고 극단적 수익에만 목을 매는 자들은 수익의 극대화를 외친다. 자본만 앞세우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천민자본주의가 일상이 된 대한민국이 변하기를 많은 이들은 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 권력의 일부가 바뀐다고 그 못된 시스템이 하루 아침에 바뀔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무모하다. 오랜 시간 투쟁을 해서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득권 집단들의 탐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단단하다.
수구 세력들의 집요한 공격. 그리고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이들로 인해 다시 부정의 시대로 돌아가기 원하는 흐름은 그래서 씁쓸하다. 수구 언론들은 여전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고 그 길로 가라 요구하고 있다. 다른 언론들은 기계적 중립을 외치며 수구 언론의 프레임에 빠져 있는 경향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는 한다.
재벌 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취업해 일하라고 청년들의 구직난을 비난하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실제 그 방법이 답이다. 재벌이 아니더라도 일 할 곳은 찾으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쉽게 중소기업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시스템에 큰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 일만 열심히 하면 살 수 있었던 시절과는 다르다. 그렇게 변하는 사회에서 과거를 앞세워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우둔한 것은 없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처음 발을 들인 직업이 남은 삶을 좌우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우선 선택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신계급 사회는 이미 공고해져 가고 있다. 돈이라는 새로운 신앙에 몰입한 사회는 돈으로 줄을 세웠다. 지난 정권이 추구했던 그 돈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아넘기는 시대는 서글퍼질 수밖에 없다. 돈은 공평함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돈의 특성은 사회의 불평등을 극대화 시킨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라면을 언급했다. 왜 이 시점 라면을 이야기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다. 1963년 라면이 처음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이 신기한 인스턴트 식품은 한국 사회의 식문화를 바꿔 놓았다. '라면으로 보통 끼니를 때운다'는 '라보때'라는 신조어가 태어나며 '라면의 정치경제학'은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70~80년대 산업화가 한창인 구로공단에서 시작된 배고픈 청춘들의 유행어는 잔인하게도 2018년을 살아가는 현재도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처음 라면이 세상에 알려진 시대와 마찬가지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유희 거리로 남겨져 있기도 하지만, 많은 청춘들은 '라보때'의 서글픈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시인의 라면 애찬은 그나마 애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헛헛함을 조금 줄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소화도 잘 되지 않은 라면 면발에 찬밥을 말아 허기를 채워야 했던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변했을까? 여전히 노동자들은 허기지고 힘겹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2년 전 구의역에서 아직 10대였던 김 군과 함께 하던 가방 속 먹지도 못한 컵라면 하나. 그리고 현재 태안 화력발전소의 또 다른 김 군의 가방에도 컵라면이 존재했다. 그들의 가방에는 왜 컵라면이 있어야 했을까? '라보때'의 역사는 그렇게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여전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위험의 외주화'가 일상이 되면서 하청의 재하청을 받는 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차등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을 탓하는 사회 분위기는 결국 수많은 '라보때'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 뿐이다.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마치 문 정부가 들어서 경제가 폭락하는 듯한 언론의 공세는 부당한 행위일 뿐이다. 전국의 땅을 파해치고 부동산 투기를 일상으로 이끄는 돈 잔치를 하면 마치 경제가 호황인 듯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현재 얼마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지 우린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경제의 체질 개선을 하지 않는 한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고단한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라면이 누군가를 사지로 내미는 '라보때'가 아니라 신기하고 흥미로운 먹거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노동 시장 전체가 새롭게 변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현명하게 넘기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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