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삶. 어쩌면 가장 불행한 삶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누구나 꿈을 꾼다. 커서 뭐가 되고 싶다는 꿈들을 꾸며 살아가지만 그 꿈을 이루고 사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꿈이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우매한 것일까?
행복해진다는 것;
너무 일찍 철이 들어 아픈 시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가
시은이는 꿈이 많다. 영화 감독이 되고 싶은 거제여상의 어린 소녀에게 꿈은 위대했다. 학교에 가지 말고 취직하라는 어머니와 거래 아닌 거래를 제안했다. 청소년 시나리오 공모전에 보낸 글이 덜컥 대상을 받았다. 그렇게 어머니와 거래에서 승리한 시은이는 모든 것이 이뤄지는 듯했다.
행복은 언제나 불행을 동반한다. 이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할 뿐 언제나 지근거리에서 번갈아 등장하고는 하니 말이다. 시은의 어머니는 남편의 죽음에 맞서 회사와 싸우고 있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이야기하고 있는 회사와 그렇지 않다고 맞서는 이유는 남겨진 아이들을 위함이다.
아이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제대로 확인 시켜주고 싶었다. 노동자로 건강하게 살아왔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절대 가족을 버리고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 일로 모든 것이 뒤틀리고 무너지고 있음에도 어머니는 이를 놓지 못했다.
시은이의 고민과 불행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장을 찾았던 시은은 그곳에서 어머니와 남자친구인 승찬의 아버지를 봤다. 그 기묘함 속에서 시은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대상을 받은 후 시은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행복했다.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그래서 멀어진 태선이 다시 등장하며 시은과 승찬의 관계도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태선의 등장으로 흔들릴 일은 없었다. 거제의 삶이 아닌 뭔가 새로운 것을 찾던 시은에게 그곳에서 촬영하던 현장과 그곳에서 일하던 태선도 특별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꿈을 꾸듯 그렇게 잡히지 않은 내 것이 아닌 그 누군가를 사랑한 것은 시은에게 현실을 벗어나게 해주는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단편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던 날 시은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게 현실을 직시한 시은은 승찬과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다시 한 번 현실과 마주한다.
성적 1등급임에도 시은은 장학금에서 탈락했다. 회사에서 주는 장학금에서 명확하게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장학금 대상에서 탈락한 시은에게 누군가 장학금을 지불했다. 어렵게 확인한 결과 장학금을 지불한 것은 승찬의 아버지 동석이었다. 회사가 시은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은 것은 시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회사와 법적 다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딸에게 장학금을 줄 수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동석은 자신의 돈으로 시은에게 장학금을 준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알고 이를 받을 수는 없었다. 시은도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동석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판장까지 갔던 시은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돈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너무 보고 싶은 아버지. 시은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자신의 곁을 떠났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없는 이유는 단순히 여상에 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며 말들이 많았고, 그런 이유로 친구들과 싸우고 더는 친구가 아니게 되었다. 그 지독한 관계들은 결국 시은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인생이란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삶이기도 할 것이다.
땐뽀반은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 전국 단위 대회에서 수상을 하지 못하면 이규호 선생님이 전근을 가야 할 처지였다. 아이들을 위해 살아가는 교사에게 아이들 때문에 전근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은 불합리하다. 대회만 잘 치르면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고 무대에 오른 그들은 성공했다.
고3이 되면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물론 누군가는 대학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땐뽀반은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학창시절 마지막 추억이다. 그 추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아이들은 그래서 더 아프고 힘들기만 하다. 땐뽀반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프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이규호 선생님도 계속 학교에 남게 되었다는 사실에 행복한 것도 잠시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그들은 여전히 땐뽀반의 추억과 함께 한다. 몸이 기억하는 추억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몸에 각인된 기억의 힘은 그래서 위대하다.
현실과 타협을 하는 어머니.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남편의 명예를 딸의 미래를 위해 바꾸려는 어머니. 회사를 포기하고서라도 딸의 꿈을 이뤄주고 싶은 어머니는 그래서 위대하다. 하지만 이미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시은은 스스로 꿈을 포기했다. 그게 맞다고 시은은 생각했다.
딸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영화 포스터와 책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린 것을 엄마는 다시 방에 돌려 놓았다. 엄마와 딸의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 아버지 죽음 후 한 번도 가족끼리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사는 게 힘들어 죽은 게 무슨 죄인가?"는 시은은 아버지는 이상만 높았다고 했다.
이상만 높고 현실로 이루지 못하는 삶. 그 간극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한 것이라 생각하는 시은과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어머니. 지독할 정도로 남편이자 아버지의 삶을 지키고 싶었던 어머니의 힘겨움은 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힘이니 말이다.
장학금을 준 것이 승찬 아버지란 사실과 재판을 받는 어머니의 삶을 보고 시은은 승찬과 이별을 준비했다. 그렇게 이미 마음을 정한 시은은 자신의 꿈도 내려 놓았다. 꿈을 이룬 태선도 행복하지 않다. 원하는 것을 이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태선의 말에 시은은 어쩌면 용기를 얻었을 수도 있다. 꿈을 포기하는 용기 말이다.
행복은 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엄마. 자기 인생은 포기한 채 자식을 위해 살아가는 엄마는 불행하다는 시은의 말은 그래서 아프다. 행복은 과연 뭘까? 모든 것을 잃고 방황만 하던 혜진에게 땐뽀반이 대상을 차지한 것이 행복했다. 그것으로 세상 모든 것을 얻었다.
시은이 왜 자신에게 헤어지자고 하는지 승찬은 오해했다. 영화 감독으로 다시 돌아온 태선을 다시 좋아한다고 생각한 승찬은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은을 놔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승찬은 생각했다. 시은은 승찬을 계속 만나는 것은 곧 아버지를 부정하는 듯해 함께 할 수는 없었다. 해피엔딩 영화를 보며 물던 시은은 그렇게 영화와 같은 해피엔딩은 없다는 말로 관계를 정리했다.
"춤출 때도 행복하고, 밥 먹을 때 우리집 강아지 볼 때"
아무 것도 걱정이 없어 보이는 나영이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다. 각자 나름의 고민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이 이야기를 하다 나온 행복의 정의다. 이를 두고 아이들은 그건 행복이 아니라 즐거운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영은 다시 반문한다. 그게 행복이 아니면 뭐냐고 말이다.
아이들의 성장기를 이토록 아름답고 현실적으로 담아낸 이야기는 찾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땐뽀걸즈>는 기존에 나온 학생 드라마의 판 자체를 바꿔 놓은 작품이다. 대중적인 재미를 위한 자극적 소재도 극적인 상황들도 나오지 않아 밋밋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렇게 담담하지만 묵직하게 삶을 이야기하는 <땐뽀걸즈>는 최고의 작품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