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을 든 민중들은 봉기했다.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수탈해왔던 자들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분노한 백성들을 그들은 막을 수 없다. 봉기 전 백성들은 힘없고 나약한 존재들 일지 모르지만 함께 뭉치면 그 누구보다 강력한 존재가 바로 민중이기 때문이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횃불을 들고 탐관오리가 있는 관아로 향하는 민초들의 행진에 술 마시고 기생들과 춤을 추며 즐기던 탐관오리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고부에서 일어난 봉기는 그렇게 조선 팔두에서 벌어질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고부에서 가장 악랄한 자는 백가다. 아전이지만 상전들을 쥐고 흔드는 그는 실질적인 악의 화신이다. 고부 군수가 와도 이방인 백가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탐욕스럽고 악랄한 백가에 중요한 것은 돈과 아들의 출세다. 그것 외에는 백가가 목숨을 거는 일은 없다.
큰아들이지만 몸종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해결사로 전락한 이강은 피투성이가 된 백가를 안전한 곳으로 모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그를 구하려던 이강은 객주 자인과 계약을 하며 겨우 숨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백가가 가지고 있는 쌀을 넘기는 조건으로 그를 숨겨주기로 했던 자인은 그렇게 장사꾼의 덕목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필요한 쌀을 얻기 위해 탐관오리를 숨긴 자인의 그 행동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앞날을 바꾸는 이유가 된다. 그 경험치들이 쌓여 운명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민중 봉기는 그렇게 고부를 완전히 장악하며 성공했다. 물을 가둬둔 보도 폭파하고, 탐관오리들을 붙잡는 등 모든 것은 성공한 듯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동무수학했던 전봉준과 황태주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대립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주는 이 상황이면 봉기의 목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의 문제는 궁에서 알아서 처리하면 된다고 봤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황태주는 주장했다.
양반이지만 누구보다 백성들의 편에 선 황태주다. 하지만 그의 사고에서는 임금 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임금에 대항하는 방식은 취할 수 없다는 것이 황태주의 생각이고 가치관이다. 하지만 전봉준은 달랐다.
군주를 앞세운 황태주의 논리와 달리, 백성이 곧 힘이고 모든 것이라 그는 믿었다. 동학이 이야기하는 인내천 사상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전봉준은 고부 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인 민란으로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을 실천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장두 전봉준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되는 장면은 분노한 민중들에게 이끌려 처형을 당하던 이강을 구하는 장면이었다. 모든 이들은 악랄하게 자신들을 수탈하는데 앞장선 이강을 봐주면 그건 더는 장두가 아니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분위기는 가열되었다.
누구도 그 분위기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찬물을 부은 것은 이강의 어머니다. 아버지 백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강이 무슨 죄냐는 어머니의 분노는 분노한 그들을 조금은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장두 전봉준의 몫이었다.
"날 위해서라도 너는 다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대의보다 복수에 집착하는 군중에게 혁명의 실패로 복수하는 법이거든"
전봉준이 이강의 손을 칼로 찌르며 "이강아"라고 부르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저것이 너의 이름이다"라는 그의 의지는 명확하다. 거시기로 불리는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이강에 대한 분노와 분풀이는 결과적으로 대의명분을 앞세운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사사로운 복수를 위한 봉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전봉준의 이 발언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강이 새롭게 태어나가 거시기가 죽은 그 순간은 많은 것들이 변화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당당 이강이 악랄한 백가의 집안사람이 아닌 전봉준의 편에 서는 동기가 된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자인 역시 보부상들에게 '장두를 죽이라'는 지시를 어기고 장두 전봉준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었다. 단순히 자신의 복수를 위해 혹은 또 다른 탐욕의 이름으로 하는 민중 봉기가 아니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잘못을 바로잡고 이를 통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봉준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과거 민중 봉기의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전봉준의 이 기개는 많은 이들이 그와 함께 하도록 하는 힘이었다.
전봉준과 황태주의 균열, 여기에 신임 고부 군수가 직접 백성들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까지 보이며 빠르게 민심을 수습하는 과정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성난 백성을 잠재우고 다시 악랄하게 다스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뇌물을 주고 모든 것이 준비된 과거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구하러 고부로 몰래 들어온 이현은 사력을 다해 아버지를 구해냈다. 이현을 짝사랑하는 황태주의 동생인 명심의 도움까지 받으며 도피에 성공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잠시 찾아온 평온한 고부에 가장 악랄한 백가가 다시 호위를 받으며 돌아왔기 때문이다.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 백성들에게 백가의 복귀는 지옥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가마를 타고 고부로 돌아오는 백가와 그의 뒤를 따르는 아들 이현. 그들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백성들 중에는 황태주도 있었다.
이상주의자 혁명가였던 황태주의 눈앞에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확인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백가의 복귀였다.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까지 고부를 찾아 전봉준에게 더는 봉기를 이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당부라기보다는 지시에 가까웠다. 나라가 여전히 동학을 좋지 않게 보는데 봉기가 고부를 넘어가게 되면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최시형의 판단이었다.
찻잔 속의 태풍처럼 고부 안에서 멈춰버린 봉기는 빠르게 다시 과거 탐욕의 시대와 더 고통이 예고된 세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적폐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그보다 더 악랄한 사회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적폐를 품고 막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꾼들과 비호자들이 존재한다. 역사는 이야기한다. 혁명이 멈추면 다시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이 찾아온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