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저지오름이 34억을 들여 망가지고 있습니다
“명품 오름 조성사업이 진행되는 저지오름에 가보니”
“지금까지 지켜온 명품가치, 단 숨에 훼손될 위기”
명품 오름 조성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혈세 34억 원 투입된다는 이야기를 모 언론사를 통해 들었습니다. 용눈이오름, 백약이오름, 금악오름 등 탐방객들이 급증하면서 제주의 오름들이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이때, 지금이라도 조금 쉬어 가는 것만이 무너져버린 생태계를 예전처럼 복원하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이런 시점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34억 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다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오름에 금테라도 두르려는 것일까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 명품 오름 조성사업이 이뤄지는 곳은 제주시 한경면에 있는 저지오름입니다. 저지오름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 드리기로 하고요, 이미 사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한번쯤 가봐야지 하는 찰나에 인근 주민으로부터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저지오름으로 향하는 입구를 비롯하여 마을 곳곳에 이상한 시설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도로변 인도에 보도블록을 걷어내 철재가로등을 새로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마을에 있는 커다란 나무 가지마다 이상한 조명들을 달아놓아 마치 굿을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입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랍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지마을로 달려가 봤습니다.
차를 몰고 마을 어귀로 들어서니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커다란 유리구로 포도송이처럼 만들어진 조명등이 커다란 나무에 매달아 놓을 것을 시작으로 인도 곳곳에도 새로운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고, 마을회관의 주차장에도 같은 종류의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조명이 설치된 나무들도 한 두 그루가 아닙니다. 포도송이 같은 흉측한 조명등이 설치된 나무들은 대부분 팽나무들이었고, 제주도의 마을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기는 팽나무의 의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알 것이고요, 대체 마을에서 수백 년 마을을 지켜온 팽나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저지오름으로 향합니다. 안 좋은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습니다. 오름으로 향하는 골목길에도 역시 같은 종류의 조명들을 설치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오름이 가까워질 무렵, 커다란 중장비가 길을 막고 서 있습니다. 길을 다 파헤쳐 놓았습니다. 공사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름의 사면에는 무성하던 낙엽수들이 상당부분 잘려나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조명등이 설치된 아름드리 팽나무들은 한눈에 봐도 백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오래된 나무들입니다. 오랜 세월 마을의 어귀에서 마을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겪으며 마을을 지켜온 나무들입니다. 오래된 팽나무들은 신성시 하고 액운이 있을 때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행정에서는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에 띠는 커다란 팽나무 대부분에는 이렇게 희한한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유리구 속에는 무수히 많은 광섬유가 연결되어 있어 밤에 빛을 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을회관 주차장 화단에도 크기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주차장 곳곳에도 이런 등을 메 단 철재가로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화단이라는 것이 화초를 가꾸거나 나무를 심어 가꾸어야 제멋이 나는 것입니다. 도심지 놀이공원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랍니까.
팽나무에 달린 조명은 그 크기도 상당합니다. 커다란 줄기에 달아놓은 것으로 보아 무게도 상당할 것 같습니다.
자세히 보니 나무줄기에 칭칭 감아놓은 쇠사슬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 생태계에도 심각한 지장을 줄 것이 뻔하고, 오래되면 녹이 슬고 시뻘건 녹물이 뚝뚝 덜어질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말문이 막혀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대체 누가 이런 발상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발길을 돌려 오름으로 향합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오름의 길목에도 어김없이 광섬유로 되어 있는 조명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조금의 공간만 있으면 여지없이 가로등을 박아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백 미터에 이르는 오름 입구 골목길에 같은 종류의 가로등을 세워놓았습니다. 시설물 구조를 잠깐 살펴보니 태양열 집열판이 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낮에 태양열을 비축했다가 밤에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돌담으로 되어 있는 골목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 하며, 또한 왜 이러한 조명등이 굳이 필요한 것일까요? 야간탐방객 유치라도 할 생각일까요?
내부를 잠깐 살펴보면 광섬유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밤에는 상당한 빛이 이곳에서 발생될 것 같습니다.
저지오름을 뒤로 하고 철재 광섬유 가로등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이시나요? 주변경관은 완전 무시된 채 어울리지도 않는 구조물을 거액을 들여 설치하고 이렇게 설치된 가로등에서 나오는 화려한 빛은 오름 생태계에는 과연 지장이 없을까요?
끊임없이 탐방객들이 오가는 탐방로는 중장비를 동원하여 완전히 파헤쳐 놓았습니다. 탐방객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위험하게 곡예 하듯 길을 건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전에 조그맣게 있던 화장실은 철거되어 그 옆에 큰 규모의 화장실 건물이 들어서 공사를 마친 상태입니다. 얼핏 보면 위락시설이라도 들어선 것처럼 보입니다. 탐방로를 파헤친 건 이 건물의 관로 공사를 위해서입니다.
오름 쪽으로 가까이 발길을 옮기다 보니 오름 사면에 수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간 것이 보입니다. 왜 나무를 잘라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명품 숲을 자랑하며 무성하게 자리를 지켜왔던 낙엽수들이 잘려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 광경을 보니 사업내용에서 봤던 해송분재형 가지치기 사업이 떠오릅니다. 해송주변으로 수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간 것으로 보아 소나무를 분재형으로 가꾸기 위한 기초 단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쯤에서 해송분재형 가지치기는 무엇일까 모두가 궁금해집니다. 해송분재형 가지치기 사업은 전체사업비 34억중 절반인 16억이 넘게 들어가는 사업(미디어제주 자료 참고)입니다. 화분에서 관상용으로 보아왔던 분재소나무를 아실 겁니다. 오름에 있는 소나무들을 이러한 분재형으로 인위적인 힘을 이용하여 변화시키겠다는 발상인 것입니다.
보통 제주의 오름들은 사유재산으로 행정에서도 마음대로 손을 못 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소유임을 알리는 팻말이 눈에 잘 띠는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제주도와 제주시 행정이 서로 협의 하에 진행되는 사업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제주도에서 최근 가장 심한 홍역을 앓고 있는 곳들이 바로 오름들입니다.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라도 휴식년제를 도입하여 잠시 쉬어 가는 것이 정답인데, 이곳은 외려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고 안달입니다.
물론, 오름의 구조상 이미 황폐해진 다른 오름들과는 저지오름이 많이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울창한 해송과 잘 가꾸어진 숲길 그리고 훼손되지 않은 분화구 등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름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지오름은 이미 2007년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저지리 마을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뽑히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생태관광 시범 마을로 선정되어 운영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미 저지오름을 비롯하여 저지리 마을은 제주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명품마을입니다. 그런데 잘 가꾸어진 명품마을과 명품오름을 34억이라는 거액의 혈세를 들여가며 인간의 힘으로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로 급격하게 황폐화 되어가는 제주도, 미처 따라 잡을 수도 없는 쓰레기와 생활하수 대란, 다소 힘들고 버거운 부분들은 있을 수 있겠지만,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을 행정에서 앞장서서 망가뜨리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기 전에 당장 중단해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