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기자가 될 수 있었던 준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학창시절부터 주목을 받아왔던 준하는 당연하게 기자가 되든 아나운서가 되든 모두가 선망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할 수밖에 없다. 지독할 정도의 가난과 극단적 범죄가 벌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아버지 앞에서 준하의 선택은 의외였다.
노치원에서 만난 혜자와 준하;
밥풀이와 멸치볶음의 먹먹함과 한없이 망가진 영수와 현주의 로맨스
지옥 할머니가 잠든 사이 조용하게 시작된 영수의 ASMR 방송은 마지막 단계인 고추를 씹으며 끝나고 말았다. 지옥 할머니가 깨어나며 방송도 종료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혜자네 집은 언제나 동일하다. 여전히 취직도 하지 못한 채 인터넷 방송만 하는 오빠와 부모님.
달라진 것이라면 너무 늙어버린 혜자와 택시기사가 아닌 경비원이 된 아버지의 차이 외에는 없었다. 그 작은 변화는 큰 차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가난하지만 단란하고 행복했던 혜자의 집은 그녀가 갑자기 늙으며 모든 것이 뒤틀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큰 돈을 벌겠다는 꿈만 가지고 있는 영수는 호기롭게 짜장 10그릇을 시켜 먹방에 도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함 그 자체였다. 8명이 전부인 영수 방은 짜장면 빨리 먹기 도전을 했지만, 한 그릇도 끝내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영수가 황당한 짓을 벌일 것이라 예감하고 직접 배달을 온 현주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친구 오빠인 영수를 좋아했던 현주는 그게 자신 인생 최악의 오점이었다. 이제는 절대 영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들은 관계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짜장면 값을 빌미로 만날 수밖에 없는 영수와 현주의 관계를 흥미롭기만 하다. 꿈이 사라진 청춘들의 애잔하고 쌉싸름한 로맨스가 언제 다시 달달 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질 정도다. 이들의 사람은 거칠지만 시작되었다. 짜장면 값을 갚겠다며 공원에서 막춤을 추다 현주의 한 방으로 끝나버린 그 공연은 이들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준하의 집에서 키우는 개가 자신이 키우던 '밥풀이'와 너무 닮았다. 밥풀이가 집을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혜자는 준하네 '녹용이'가 분명 자신의 개라고 확신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준비해주었던 녹용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버렸다. 그런 녹용을 먹고 힘이 넘쳐 두 발로 뜀박질을 하던 강아지를 본 후 준하는 '녹용이'라고 이름 지었다.
혜자가 밥풀이를 찾아가는 이유는 단순히 강아지를 찾기 위함 만은 아니었다. 준하를 보기 위함이었다. 준하에 대한 감정이 여전한 혜자는 변한 외모로 다가설 명분이 없었다. 그렇게 밥풀이를 핑계로 찾아가지만 강아지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물기만 할 뿐이다.
달라진 얼굴 때문인가 하고 25살 혜자의 채취가 남은 옷을 입고 가지만 허사였다. 친구의 제안으로 소주를 마시고 찾아가 보지만 여전히 그 개는 혜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어떤 방법을 강구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밥풀이에 아쉬움을 품고 있던 혜자를 위해 아버지가 직접 나섰다.
끊임없이 찾아와 녹용이를 밥풀이라 부르며 물리고 가는 혜자를 위해 강아지를 데려다 주려던 사이 혜자 아버지와 만난 준하. 그렇게 강아지는 돌아왔지만 밥풀이는 아니었다. 혜자에게 숨겨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지만 시간이 빨라진 그 사이 문제가 발생한 것은 명확하다.
혜자만 모르는 밥풀이의 비밀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다리를 저는 아버지를 위해 멸치볶음을 싸주는 혜자. 자신의 갑작스러운 노화로 인해 허리띠를 더 조여야 하는 상황임을 알게 된 혜자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뼈에 좋으니 다 먹으라는 멸치볶음만 먹지 않고 남기는 아빠. 딸이 해준 것이라 버리지도 못한 채 매일 다시 가져오는 멸치볶음에도 비밀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근무하는 아파트까지 찾아간 혜자는 어려운 상황을 보고 분개한다. 그렇게 둘 만의 술자리를 가진 자리에서 혜자가 싸준 멸치볶음을 힘겹게 술안주로 먹으며 "뼈에 좋다며"라며 웃는 아빠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은 그 시간이 담겨져 있는 비밀이다. 의도하지 않게 준하의 비밀을 알게 된 혜자. 준하 할머니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갔다 사망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갑자기 누군가 들어와 숨은 상태에서 준하와 인간이기 포기한 아버지의 다툼을 알게 된 혜자는 아바타 속 대사인 "I See You"를 통해 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저 외모만이 아니라 내면의 모든 것을 본다는 것. 그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눈이 부시게>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가치이자 주제일 수밖에 없다. 노인들의 유치원이라는 '효자 홍보관'을 찾은 혜자는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기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준하가 그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곳 팀장으로 근무한다는 준하의 모습을 보고 혜자가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 충격은 과연 다시 시간을 돌려 놓을 수 있을까? 준하를 위해 시간을 돌려 놓겠다고 했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고로 수정되어버린 인생.
혜자는 과연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멈춰버린 시계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시계는 혜자의 선택을 쉽게 허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문이 겹겹이 쌓인 운명의 시간들은 과연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한없이 남는 것이 시간이라 생각했던 시절과 달리, 아쉽기만 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는 혜자의 고군분투는 앞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부모님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혜자의 좌충우돌과 준하와의 사랑은 <눈이 부시게>를 기대하게 한다.
바보 같기만 하던 영수가 현주에게 직진하며 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하는지 그건 모두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 선택 앞에선 이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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