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조 회장과 가족들의 갑질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책임지는 행동이 없었던 그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내려진 셈이다. 그동안 오너 리스크를 안고 가야만 했던 재벌가에게도 이제는 경종이 울릴 수밖에 없다.
철옹성으로 불리던 재벌가도 이제 더는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조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 실패다. 한진그룹에서 가장 큰 곳은 당연하게도 대한항공이다. 이곳에서 경영 배제를 당했다고, 조 회장이 그룹에서 완전히 물러날 가능성은 적다.
조 회장 일가의 지배 구조는 여전히 강력하다는 사실을 이번 주주총회 결과는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적 지탄을 받았음에도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안 투표에서 찬성 64.1%였다. 연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66.66%를 얻어야 했지만 2.5%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지 못하고 경영권을 지키는데 실패했다.
반대 35.9%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막기는 했지만, 완전한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은 멀다. 주주의 의지가 결국 총수 교체도 가능해진다는 선례를 만든 것에 만족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오너 리스크를 막아낼 수 있는 방법 역시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너 일가가 그 어떤 잘못을 해도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현실. 그룹의 비호아래 모든 책임은 가해자가 아닌 기업이 져야 하는 구도는 바뀌어야 한다. 조양호 회사 사건을 통해 어떤 재벌이든 사안에 따라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국민연금이다. 대한항공 2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주총 전날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한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11.56%로 33.35%인 조양호 일가와 측근에 이어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선언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재벌가의 거수기 역할만 해왔다. 국민의 돈을 가지고 자금 운영을 하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편이 아닌 재벌가의 편에 서서 그들의 경영권 방어에 도움만 줬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 강력한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오너 리스크에 대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반갑다.
2016년 12월 국내에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처음 적용된 것이 바로 대한항공 주총이다. 이어진 SK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했지만 8% 정도의 지분으로는 최태원 회장과 측근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거수기로 전락했던 국민연금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의 이익에 앞장서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발전이다.
주주 행동주의는 주요 선진국에서는 오래전에 정착됐다. 이를 통해 그룹 총수의 만행을 막고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런 주주 행동주의가 본격적으로 국내에도 정착되면 많은 것들이 변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해외 선진국과 달리,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지배력이 절대적으로 강한 국내에서는 정착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과정이 쉽지 않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재벌가 오너의 문제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던 과거와는 작별을 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오너는 경영에 더는 참여할 수 없도록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돈 권력 뒤에 숨는 행태를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되니 말이다.
대한항공 사례는 향후 적극적인 주주 행동주의와 함께 연기금 등 기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주인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집사처럼 최대한 주인의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는 없다. 시대는 변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중심에는 국민이 존재한다.
조양호 회장 일가에 대한 반격은 이제 시작이다. 누구든 정상적이지 못한 경영자라면 언제든 퇴출 될 수밖에 없다는 강력한 경고다. 한번이 어렵지 시작된 후에는 멈출 수 없다. 긍정적 효과를 낼 수밖에 없는 주주 행동주의는 이제 정착의 길을 밟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보다 적극적으로 오너 리스크를 줄이면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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