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의 용기에 왜 많은 이들은 나서지 않는가? 故 장자연의 10주기가 된 올해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서 국내로 돌아와 증언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사이 '13번의 증언'을 해왔던 그녀는 다시 증언자가 되어 세상에 자신을 알렸다.
'故 장자연 사건'이 아닌 가해자의 이름을 붙인 사건이 되어야 한다는 윤지오는 그동안 가명과 얼굴을 가린 채 증언을 해왔다. 21살 어린 나이에 맞이한 장자연의 죽음. 그 죽음 뒤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배우가 되고 싶어 장자연 소속사에 들어서는 순간 윤지오에게도 고통은 시작되었다.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도 돌아와 배우의 꿈을 키우던 윤지오에게 강압적인 소속사 분위기를 견디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소속사에 유명한 중견 배우들은 있었지만, 신인은 장자연과 윤지오가 전부였다. 부모가 없던 장자연과 부모가 캐나다에 있던 윤지오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돌아와 연기 생활을 하려는 윤지오에게는 엄마가 들어와 함께 하게 되었고, 그렇게 술집에 불려 나간 상황에서도 9시만 되면 윤지오는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폭력적이고 악랄한 사장이라고 해도 부모가 있는 어린 여성을 함부로 하지는 못한 셈이다.
결국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던 장자연만이 희생양이 된 셈이다.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장자연이 쉽게 취한 모습. 어린 시절에는 잘 몰랐는데 그건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뭔가 약물에 취한 듯한 장자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윤지오에게 그 모든 기억은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계약금 300만 원에 위약금이 1억 인 말도 안 되는 불공정 계약서. 여기에 내용도 사장 마음대로 소속 연예인을 이용할 수 있는 조항들도 있었다. 당시 유행했던 노예 계약이 그들을 옥죄고 있었다. 윤지오는 그 사악한 마수에서 벗어나 다른 소속사로 옮길 수 있었다. 부모와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촬영 현장에서 만난 장자연은 윤지오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자신도 나가고 싶지만 안 된다고 아픔을 토로했던 그날이 장자연과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한다. 며칠 후 과거 매니저에게 장자연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을 지킨 어린 윤지오는 장자연의 죽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그때는 상상도 못 했다. '장자연 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고 그렇게 당시 장자연을 알고 있던 이들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외면했고,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윤지오만이 경찰의 강압적 분위기 속에서 참고인 조사가 아닌 수사를 받았다.
무려 10년 동안 그녀를 옥죄는 그 고통과 공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참고인은 범죄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치 취조를 하듯 수사를 했다. 그리고 다른 목격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가해자는 정작 제대로 된 수사도 받지 않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조사를 받았다는 이들도 호텔에서 1, 2시간 잠깐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참고인인 윤지오는 늦은 시간 경찰로 불려 가 오랜 시간 취조하듯 조사를 받았다. 반대가 되어버린 상황. 그게 바로 故 장자연에 대한 죽음의 진실이다.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가해자들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저 소속사 사장과 분쟁을 하던 매니저만 처벌을 받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작성한 리스트를 소속사 사장과 싸움 도구로 만들어버린 매니저. 그리고 그 뒤에 숨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배우들. 그들은 그렇게 10년 동안 침묵을 선택했다.
모두가 침묵하는 동안에도 윤지오는 지속적으로 증언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대였다. 가명에 얼굴도 숨긴 채 증언을 했지만, 이미 방송가에서는 故 장자연 증인으로 알려지며 배우로서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다. 미인대회 역시 증인이었다는 이유로 참가조차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윤지오의 선택은 부모가 사는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그 기억은 10년이 되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세상에 공개했다. 그게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경찰차에 탄 채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도 집요하게 자신을 미행하고 추적하던 해당 신문사 기자들의 횡포는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지 10년이 지났지만 가해자들은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고 지금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자신을 모두 드러낸 채 언론에 나서는 이유는 가해자들이 최소한 죄책감과 죄의식을 느끼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법적으로 처벌을 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들이 인간이었음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윤지오의 용기는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다. '유일한 무기가 된 자신'은 1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지금은 8명의 변호사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그녀는 혼자였다.
누구 하나 관심도 없었고, 도움도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경호원을 고용하고 실시간 방송을 통해 자신이 무사함을 알리는 '생존 신고 방송'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 흔한 단체에서도 윤지오의 편에 서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관심이 커지자 늘어나는 그녀에 대한 지지는 그래서 서글프다.
"저는 자살할 생각이 없습니다"
故 장자연에 대한 트라우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용이다. 그녀가 '생존 신고 방송'과 방송 인터뷰를 하면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장자연은 자살이 아니라고 그녀는 확신한다. 살기 위해 리스트까지 준비한 그녀가 그런 극단적 선택을 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윤지오의 판단이다.
정신과를 직접 찾아 자신이 우울증 증세도 없다는 사실을 남기기까지 한 윤지오는 만약 자신이 잘못된다면 그건 누군가에 의해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했다. 누구도 자신을 위협하고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노력이다. 왜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 사회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피해자다움'을'피해자 다움'을 강요하면서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침묵을 지키는 사회. 그녀는 가해자가 아니다. 수많은 목격자들 중 유일한 증언자일 뿐이다. 그녀가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는 그녀에게 '피해자 다움'을 강요하지 말라. 그것 역시 잔인한 폭력일 뿐이니 말이다.
두 달 연장된 과거사위 수사가 과연 어떤 결말을 낼지 알 수 없지만 우린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의 용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또 다른 사건의 유일한 증언자가 우리 중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건 윤지오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명확해진다. 그게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