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방송에서 가능성을 보였던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가 정규 편성되었다. 시즌제로 준비된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시사 프로그램의 근엄함을 탈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깊이를 갖추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쉽게 핵심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이 시대 가장 적합한 시사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정규 편성된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첫 방송에서 다룬 내용 역시 심상치 않다. 손석희 앵커와 故 장자연 성폭행 사건을 다뤘기 때문이다. 이 시사 프로그램의 핵심은 가짜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정규 첫 방송에서 다룬 주제부터 결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마치 광풍처럼 손석희 앵커 사건이 커졌다. 그리고 득달같이 달려든 종편과 지상파 방송들의 보도 전쟁은 경악스러운 민낯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취재를 하고 보도를 하는 것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기자가 2017년 손석희 앵커의 차량 접촉 사고를 보도하려하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일자리를 제안하고 폭행했다는 것이 보도의 핵심이다. 해당 프리랜서 기자 역시 이를 집중적으로 언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 해당 사고가 있던 날 차량에는 30대 여성이 동승하고 있다는 기사는 엘로우 저널리즘의 백미였다.
이들이 보도하고 싶은 지향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SBS의 보도 행태는 다시 도마 위에 올려졌다. 견인차 기사와 손 앵커의 대화 녹음 내용이라며 뉴스 시간에 보도한 내용은 악의적 편집이 만든 의도적인 몰아가기 기사였기 때문이다.
종편을 중심으로 이들이 손 앵커를 공격하고자 하는 부분은 도덕성이다.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집중한 그들의 보도의 핵심은 명확했다. 사실로 드러나지도 않은 추측을 앞세워 공격한 결과 나온 것은 허위 보도이자 가짜 뉴스 양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SBS는 철저하게 시청자를 기만하는 가짜뉴스를 만들었다. 견인차 기사는 분명하게 자신이 잘못 봤고, 언론에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에 사과를 했다. 하지만 SBS는 이 부분을 삭제한 채 손 앵커가 견인차 기사를 압박하는 듯한 분위기로 편집해 내보냈다.
30대 여성과 누구도 찾지 않는 의슥한 곳으로 갔던 손 앵커가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극을 펼쳤고, 견인차들이 합세해 도망가는 손 앵커를 붙잡았다는 것이 황색 언론이 주장하고자 했던 핵심이다. 하지만 실제 사실은 이와 정 반대였다. 해당 장소는 손 앵커가 오랜 시간 살던 곳이었고, 주차장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그의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주차장이었다.
동승 여성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뺑소니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사고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기레기로 전락한 언론들은 주변 모텔들을 돌아다니며 손 앵커 숙박 유무를 캐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리 찾아다녀도 그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악랄한 보도는 손 앵커가 몸담았던 대학까지 이어졌다. '미투 폭로'가 있었다는 거짓말로 접근한 기자의 한심한 유도 신문에 대한 관계자들은 황망해했다.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쉽게 간파한 그들에게 기자들의 행태는 '기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황색 저널리즘의 정석을 보여준 해당 사건은 아직 법적인 절차가 남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그동안 언론이 손석희 앵커를 대상으로 보도한 내용 중 진실은 과연 존재하는지 되묻게 될 수밖에 없다. 악의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선정적 보도로 상대를 폄훼하기에 여념이 없는 언론의 행태에 대중들은 분노한다.
故 장자연 성폭행 사건은 더욱 섬뜩하고 무섭기만 하다. 이 사건의 핵심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쉽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일반인들은 그럴 수있다. 무조건 법을 앞세워 고소하겠다고 나서는 언론사를 대상으로 싸우는 일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연 같은 언론사들도 침묵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하다.
언론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채 사망한 힘없는 한 배우를 방치했다. 잔인한 방식으로 외면한 언론들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인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는 동안 터진 사건의 행태나 이를 보도하는 방식을 보면 철저하게 10년 전 사건을 막아내기에 여념이 없다는 확신만 들게 한다.
다수의 목격자 중 유일한 증언자였던 윤지오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크다. 뉴시스 기자가 작성한 윤지오에 대한 공격은 언론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는 확실한 물증이다. 윤지오가 자신이 주목받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장자연을 앞세워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는 기사는 악의적이다.
2018년 7월 24일 방송된 <PD수첩>은 한 여성을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를 통해 인터뷰를 했다. 외국에 살고 있는 그녀를 어렵게 만났고, 그렇게 취재에 임했던 여성은 바로 윤지오였다. 어느 날 갑자기 고인을 앞장 세워 인기 몰이를 하려는 것이 아님은 이미 많은 증거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고인의 장례식장을 마지막까지 지킨 이도 윤지오였다. 그런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경찰과 검찰에 불려가 증언을 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거대한 권력들과 맞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증언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그저 유명해지기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보도는 악랄하다.
조선일보와 스포츠조선. 방씨 이름을 가진 사장에 대한 언급들이 수없이 이어졌지만, 사법기관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아니 왜곡해서 수사를 짜 맞추기 했다. 조선일보 방 사장이 아닌 스포츠조선 ㅎ 사장이 장자연과 만났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사건 당시에도 ㅎ 사장은 증거까지 제시하며 알리바이를 확인시켰지만 사법기관은 무시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법기관까지 가해자를 감싸는 행태는 경악스러웠다. 조선일보와 특수 관계라는 한 씨의 자발적인 경찰 출석은 그래서 더 기괴하다. 그가 나서 ㅎ 사장이라는 증언을 사법기관은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검찰 과거사위 조사 과정에서 한씨는 당시 자신이 허위 증언을 했다고 밝혔다. 거대 권력이 개입한 이 사건은 철저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과거사위가 가동된 후 캐나다에 살고 있던 윤지오는 국내로 들어와 두 차례나 참고인 조사에 임했다.
윤지오는 4월 8일 국회에서 가진 의원들과 대화 속에서 검찰 과거사위가 적극적으로 수사할 의지가 없다고 밝혔다. 자신의 증언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수사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형식적인 과거사위 조사를 하고 있다는 폭로는 그래서 서글프다.
피해자 이름이 아닌 가해자 이름이 내걸린 사건이 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우린 피해자를 앞세운다. 유일한 증인인 윤지오는 다시 한번 명확하게 이야기를 했다. 장자연은 "성상납을 했다"가 아니라 "성상납을 당했다"라고 표현했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은 '성폭행 사건'이라는 윤지오의 발언에 적극 공감한다.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의 정규 편성 첫 방송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그 메커니즘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이 프로그램은 권장되어야 할 방송이다. 지상파 뉴스까지 가짜 뉴스를 양산해 내는 현실 속에서 이제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방송을 갈구하게 된 현실이 처참함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