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먹고 즐기는 예능이 아니다. 스페인까지 날아가 그들이 하숙집을 연 이유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이들을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가치는 회를 거듭하며 명확해지고 있다. 왜 그들은 길을 걷는가? 무려 28번이나 같은 길을 걷는 할아버지에게 그 길은 무슨 의미일까? 그 고민을 스스로 해보게 한다.
음식을 만들고, 순례객들을 맞는 단순한 행위에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반복되어온 나영석 사단의 먹는 이야기에도 이제는 마지막이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단순 반복 같은 패턴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나영석 사단의 힘이다.
순례객들이 적어 운영되지 않는 알베르게를 섭외해 운영하는 '스페인 하숙'에는 다양한 이들이 찾았다. 비수기라 많은 이들이 찾지 않아 가능한 시도였을 것이다. 음식을 책임지는 차승원과 접대와 관리를 담당하는 유해진, 그리고 보조 역할을 하는 배정남까지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그곳을 찾은 낯선 이방인과 같은 순례객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먼 길을 걷는 그들에게 알베르게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편하게 하루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알베르게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더럽고 불친절한 알베르게는 그저 말 그대로 밖에서 잘 수 없어 잠깐 머무는 공간이다. 그만큼 저렴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 하숙'은 반칙이다. 저렴한 가격에 최고의 공간에서 쉬고 따뜻한 식사까지 할 수 있는 곳은 찾을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이런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촬영에 허락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큰 혜택이라 보기는 어렵다. 출연료와 비슷한 개념이 서비스에 들어가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형식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는 의미다. 그 길 위 어딘가에 이렇게 따뜻한 공간 하나 정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와 한국인 순례객들이 찾은 비오던 알베르게는 모두가 행복했다. 그들 모두는 길 위에서 만나 함께 걸으며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나게 된 그들은 그래서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낯선 곳에서 정말 낯선 한국 음식을 맛본다는 것 역시 신기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도전 정신이 높은 그들에게 '스페인 하숙'은 길고 긴 그리고 험난할 수밖에 없는 길 위에서 만난 보석과 같은 것이었을 듯하다. 따뜻하고 안락하며 깨끗한 숙소와 누군가에게는 처음인 한국 음식을 경험하는 것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물이었다. 그게 바로 <스페인 하숙>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자 태어나 생활한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비슷한 이유로 길 위에 섰다. 그렇게 스스로 자초한 고난 속에서 만난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아무런 의미 없는 길 위에서 만난 그들은 친구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이 길을 선택했지만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해주는 그들에게 그 길 위의 여정이 힘겹지만은 않았을 듯하다.
유쾌한 영국인 아저씨는 그렇게 50이란 나이를 잊게 만들었고, 낯선 곳이지만 당당하게 도전한 프랑스 청년은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마드리드에 있는 한식당을 자주 찾는 스페인 여성은 그곳에서 다시 친구들과 조우해서 행복했다. 오랜 시간 걸으며 발은 엉망 진창이 되고 몸은 피곤해도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며 모은 알베르게는 행복이 가득했다.
쉼을 찾아 온 그들을 위해 차줌마는 비 오는 날이면 찾게 되는 '수제비'와 '돼지 수육'을 정성껏 삶아 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한국의 맛에 심취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듯하다. 추운 날 따뜻한 국물과 정성으로 차린 식사를 하는 것은 그게 한국식이 아니라 해도 행복한 일이니 말이다.
마드리드에서 자주 한식당을 찾는 스페인 순례객에게 젓가락질은 익숙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젓가락은 여전히 힘겨운 도전 과제였다. 그렇게 전혀 다른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은 어쩌면 여행이 주는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여행을 떠나보지 않으면 미처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었던 가치를 배우게 되곤 하니 말이다.
완벽한 후식까지 함께 한 그들은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며 알베르게의 밤을 즐겼다. 기타를 전공했다는 영국인 아저씨 사이먼의 기타 반주에 의해 분위기를 달궈졌고, 순례객들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고 쿨 하게 사라진 차줌마까지 알베르게의 밤은 행복했다.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왜 길을 걷게 되었는지 묻고는 한다. 사이먼도 한국인 서연, 스페인에서 태어난 로산나와 니에베스, 프랑스 청년 막심까지 그들은 각자 길을 걷게 된 이유들을 이야기하게 된다. 사이먼은 두 번째 순례길이었고, 로산나는 무려 여덟 번이자 그 길 위에 섰다.
사이먼은 그 길위에서 만난 77세 이탈리아 할아버지 프랑코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14살부터 함께 지낸 부인이 10년 전 사망했다고 한다.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에 울기만 하던 프랑코는 그렇게 길 위에 섰다고 한다. 그렇게 반복해서 길을 걷던 프랑코에게도 암이 찾아왔다고 한다.
암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보내고, 자신에게도 찾아온 암. 그럼에도 그는 "인생은 아름다운 선물이다"라는 말을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해주었다고 한다. 77세의 할아버지가 느끼는 인생이라는 가치의 무게는 2, 30대 청춘들이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무게감이 존재한다.
스물여덟 번이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이 반복적으로 그 길 위에 서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고된 걷기를 하게 되면 모든 생각은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잡념이 사라지는 순간 나를 보게 된다. 많은 이들이 반복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기를 찾는 이유다. 그렇게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들을 함께 나누기 위해 <스페인 하숙>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