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5월이 오면 가슴 한쪽이 답답한 이들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로 자국의 군인들에게 학살을 당한 이들의 살아남은 가족들이다. 그나마 가족의 죽음을 거둘 수 있었던 이들은 그나마 행복한 축에 속한다. 실종자로 분류되어 여전히 어디에 묻힌지도 모르는 이들의 삶은 지독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북한을 앞세우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인식시키기 못하는 정치 집단이 존재한다. 마지막 몸짓이라도 하듯 보다 강렬하게 북한을 부여잡고 빨갱이 논리를 전개하려 하지만 이제 이런 발언들에 호응하는 이들은 그들과 한 몸이 되어버린 극단적 극우주의자들 외에는 없다.
빨갱이가 먹히지 않으면 이제는 국토를 반으로 갈라 지역 갈등을 부추기겠다는 심산도 보인다. 국민들을 대신해 일을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산적한 과제를 내팽개치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총선 1년을 앞두고 사전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누군가에게는 대선을 위한 행보처럼 보일 정도다.
국가의 중요한 일들을 방기한 채 사익을 추구하는 그들의 금배지는 그만큼 가벼워보일 수밖에 없다. 점점 극단적인 발언들로 소수의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 인터넷에서 유행이라는 언어들을 사용하며 웃지만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몰라 당황하는. 그래서 찾아보면 일베에서만 유행하는 말들이 그들의 세계에서는 익숙함으로 전달되는 현실이 바로 그들의 세계관이다.
"노래 값은 막걸리 두 말이었습니다. 1976년의 겨울, 퇴역을 앞둔 나이 든 군인은 곡을 쓸 줄 안다는 젊은 군인을 찾아가서 노래를 한 곡 만들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김민기 < 늙은 군인의 노래 >"
"30년간 군대에 청춘을 바친 노병의 애환과 설움은 막걸리 적신 가사와 함께 만들어져서 전국의 병영으로 퍼져나갔으나…
가사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노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계속 불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몇 달 전에 뉴스룸에서 만난 김민기 씨는 자신이 TV에서 보았던 기묘한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5월의 광주에서 총칼을 든 계엄군이 이 노래를 부르며 행진하는데… 다른 쪽을 보니 시위대 역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 "계엄군이 저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고 시위대도 그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노래라는 게 참 묘한 거구나"- 김민기, 가수(2018년 9월 13일 JTBC '뉴스룸')"
"계엄군의 태극기와 시민군이 흔들었던 태극기. 그들은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기묘하고도 참담했던 시대의 초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39년의 시간.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너무나 길었을 것입니다"
""5월 21일 전두환 씨가 광주에 왔었다"- 김용장,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앉아쏴 자세에서의 사격은 발포가 아닌 사살이었다"- 허창환, 5·18 당시 보안부대 수사관. 민간인으로 변장한 군인들이 시위대에 잠입하여 민심을 흔들었다는 증언도 나왔고…"
""편의대 즉, 민간인 복장을 한 군인이 시위대에 들어가서 루머를 퍼뜨리고, 시위대를 과격화해서 폭동화시키는 일을…"- 김용장,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 그런 여론 공작이 결국은 무력진압을 합리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 정황도 새삼 드러났지요"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내적 검증을 거쳐 말하듯 했던 당시의 미군 정보요원은 헬기가 낮게 비행하던 봄날의 하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가해한 이들은 끊임없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잊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은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역사의 단죄를 요구하고 있으니… 그것은 마치 나라가 금했으나 끊임없이 입에서 입으로 기억되었던 '늙은 군인의 노래'처럼…"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김민기 < 늙은 군인의 노래 > 죽지도…사라져 가지도 않는 것…"
김민기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시작으로 5.18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다. 수많은 증언들이 쏟아지고 실제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들이 양심선언들을 하고 있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군대도 가보지 않았던 자들은 북한군이 광주를 점령해서 벌인 짓이라는 주장만 하고 있다.
5.18 당시 미군 정보요원이었던 김용장 씨는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기록해서 미국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보낸 인물이다. 그에게 북한군 개입설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미국이 감시 위성으로 24시간 지켜보는 상황에서 수백 명의 북한군이 휴전선도 아니고 광주까지 내려와 폭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전두환과 신군부 역시 자신들의 행동에서 북한군 개입설 자체가 불가능함을 외치고 있다. 휴전선에 있던 병력까지 후방으로 불러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독재자가 북한군이 광주까지 수백명 씩이나 내려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전두환과 당시 군부 인사들은 지금이라도 법정에 서야 한다.
계엄군의 조준 사격이 있기 전 전두환이 직접 광주로 내려와 사격 명령을 했다는 것도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전두환은 직접 광주 시민 수백명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자라는 확증이다. 김용장 씨는 전두환이 5.18 전날 광주 인근 비행장에 내려왔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친일도 독재도, 수많은 적폐들을 청산하고 바로잡아가는 요구들을 그저 복수와 탄압이라 외치는 무리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청산의 시대가 없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는 없다. 고되고 힘든 일일 수 있지만 적폐 청산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일이다.
5.18 망언을 쏟아낸 군인 영웅이라는 자의 실제 모습은 경악할 일이다. 그리고 그런 망언을 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외면하는 자한당은 오히려 막말을 옹호하는 유튜버를 초대해 스스로 자신들 모두 그 망언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5.18을 어떻게 보는지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늙은 군인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과 시민이 모두 함께 불렀다는 이 노래는 그렇게 구전처럼 떠돌며 생명력을 이어갔다. 아무리 탄압을 해도 진실은 사라질 수 없다. 5.18 망언들을 쏟아낸다고 그날의 진실이 거짓이 되지는 않다.
그들의 막말들이 극악한 방식으로 쏟아지는 것은 그들의 운명 역시 마지막 지점까지 다다랐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 불꽃은 화려하게 피우며 사라지듯, 발악의 방식도 유사하다. 단 한 번도 청산의 역사를 가져보지 못한 대한민국. 이제는 그 청산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나아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