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된 쓰레기가 발견된 한라산, 직접 가보니
짙은 신록에서 뿜어내는 청량감 때문인지, 아니면 한동안 가물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예상했던 악취는 나지 않았습니다. 잠깐 언론에 스쳐지나가는 소식을 보고 달려간 곳은 한라산 성판악이었습니다. 이곳에서 30년이 넘은 쓰레기 더미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고, 과연 어떠한 상태였기에 그 오랜 세월동안 발견이 되지 않고 방치되었을까.
성판악은 6개의 한라산 등반코스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입니다. 현재 두 개의 코스를 통해서 한라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관음사코스에 비하여 비교적 편한 까닭에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사라오름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일 주말을 막론하고 주차장이 포화를 이뤄 도로변까지 주차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주차장 앞, 그러니까 버스정거장에서 멀지 않은 숲속에 쓰레기 더미가 수십 년간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질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녔던 흔적이 전혀 없는 곳도 아니고, 아주 우연한 경우에라도 눈에 띨만한 곳이 분명한데,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그냥 지나쳤는지 모를 의문이 가득한 쓰레기 더미, 그곳을 직접 가봤습니다.
성판악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 정거장 뒤쪽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여기쯤이겠지 예상을 하고 갔는데도 단번에 눈에 띨 정도로 현장은 도로변에서 지척에 있었습니다. 악취를 예상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갔는데 필요 없을 정도로 냄새는 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상당부분 쓰레기가 치워져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쓰레기의 상당부분은 마대에 담겨 있고, 소형 굴삭기 한 대로 땅속에 파묻힌 쓰레기들을 계속 파헤치고 있었습니다. 땅속에는 뒤엉킨 비닐봉지들과 함께 빈병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파내면 파낼수록 계속 나와서 지금까지 수거된 쓰레기의 양만해도 2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굴삭기로 퍼 올린 쓰레기들은 일일이 동원된 인부들의 손에 의해서 마대에 담겨지고 있었습니다. 수거된 쓰레기들은 전부 제주시 쓰레기 매립장으로 옮겨질 것이라고 합니다.
굴삭기로 흙을 파내면 흙속에는 온통 쓰레기들이 뒤섞여 있는 형국입니다. 주변에 연탄재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타다 남은 연탄재도 이곳에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수거된 쓰레기들 중에는 1970년대에 시중에서 판매되었던 제품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린 지 40년이 넘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땅속에 묻힌 깊이를 보더라도 대략 1.5미터, 구덩이를 판 후 쓰레기를 버리고 흙을 덮어 다시 그 위에 쓰레기를 버리고를 반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쓰레기를 투기해 왔다는 얘기입니다.
한라산은 1966년에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되고,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되면서 관리를 받아왔습니다. 비슷한 시기인 1978년에는 성판악 탐방로 입구에 매점과 식당, 토산품을 판매하는 2층 건물이 들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970년대 제주도가 관광지구로 지정하면서 민간에게 특혜를 주어 휴게소를 짓도록 했고, 당시휴게소에서 등산객들과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류와 음료들이 판매되었습니다.
휴게소와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는 현장의 거리는 불과 60미터밖에 되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CCTV도 없고 관심이 덜했던 시기라 충분히 의심이 갈만한데도 조사에 나선 행정에서는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누가 투기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일까요.
오랫동안 쓰레기를 버려왔다면 과연 이곳에만 있는 것일까, 총 발견된 곳은 세 곳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으로 발길을 돌려보니 정말 어렵지 않게 쓰레기들이 널 부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대부분 수십 년 된 음료수 병들입니다.
음료수 병들은 발길을 옮길 때마다 계속해서 눈에 띱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4홉들이 소주병에서부터 시작하여 롯데칠성의 사이다병, 오란씨, 환타 병, 박카스 병, 생소한 펩시콜라 캔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듯합니다.
한라산은 제주도가 영원히 지켜야할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곳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쓰레기 더미들이 발견되어 수거가 되었기에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곳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묻혀 있는지는 모릅니다.
쓰레기와 함께 남 몰래 버려지는 것 중에는 요즘의 축산폐수가 대표적입니다. 축산단지가 많은 한림읍 지역으로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당장 편하자고, 당장 돈에 눈이 멀어 행해지는 비양심들이 결국에는 제주도에서 영원히 살아가야할 우리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