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던 <봄밤>이 첫 방송되었다. MBC로서는 야심 차게 준비한 작품이다.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그들이 내놓은 <봄밤>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10시 드라마를 파괴하고 9시 드라마 시대를 열기 시작한 첫 작품인 <봄밤>은 어쩔 수 없는 태생적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였다.
안판석 피디와 김은 작가가 다시 뭉쳤다. 그렇게 뭉친 그들이 이번에는 정해인 옆에 한지민을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감성과 안 감독 특유의 카메라 각도와 조명톤, 그리고 음악적 분위기까지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안판석 피디의 색깔로 다가올 수도 있다.
어떤 작가든 자신 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일관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일관된 스타일이 식상함으로 다가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안판석 스타일은 호불호가 존재한다. 특유의 감각을 사랑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지겨워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봄밤>은 모든 코드를 다 갖춘 전형적인 로맨스 드라마다. 두 남녀의 사랑과 이를 막아선 사회적 규범들은 첫 회부터 강렬함으로 다가왔다. 첫 눈에 반해 사랑이라는 감정이 훅 들어와 버린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은 절대 상대 가족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정인(한지민)은 오랜 연인 기석(김준환)이 있다. 슬슬 결혼이야기도 나올 정도로 그들의 관계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 하지만 뜨거운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관계는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정인은 속이 아파 들른 약국에서 지호(정해인)를 만나게 된다.
우연이지만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정인과 지호의 첫 만남은 서로 민망하다. 숙취약을 사러 왔다는 것과 지갑을 친구 집에 두고와 돈도 없는 상황은 정인으로서는 최악이다. 지호 입장에서도 아침부터 숙취 약을 찾는 여성의 모습이 정상적으로 다가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정인의 아버지 이태학(송승환)은 수영고 교장이다. 그리고 그 수영고 재단 이사장은 기석의 아버지 권영국(김창완)이다. 두 사람은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 태학은 큰딸 서인(임성언)을 의사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리고 둘째인 정인은 재단 이사장 아들인 은행원 기석에게 시집을 보내려 한다.
철저하게 딸 시집의 기준이 얼마나 큰 권력을 가졌는지가 평가 기준인 태학에게 기석만한 사위는 없다. 하지만 영국이 툭 던진 말이 불안하다.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는데 영국은 그저 오빠 동생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태학이 딸들의 행복이라는 미명 아래 권력가들에게 시집보내는 것처럼 영국 역시 결혼은 단순한 비즈니스라 확신한다.
이런 영국에게 도서관 사서에 자신의 재단에 속한 학교 교장 딸과 결혼은 비즈니스로 적합하지 않다. 공교롭게도 기석과 지호는 학교 선후배 사이다. 비록 서로 안면이 없어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선후배다. 그리고 농구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그들 사이에 정인이 있다.
지호는 약사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있다. 부모님이 키워주고 있는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아내가 사망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세탁소 하는 부모님과 아들까지 둔 약사 지호가 정인의 아버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이들 관계는 절대 맺어질 수 없는 조건들 속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뤄지기 어려운 조건들은 더욱 강렬한 끌림을 만들고 있다. 우연히 봤지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남자 지호. 첫 눈에 반한 정인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숨기지 않는 지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다음 눈이 오는 날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그들은 약국 앞에서 재회한다.
정인은 결혼할 남자가 있다고 했다. 지호는 아들이 있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고백한 그들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더는 발전하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인은 지호에게 '친구'를 제안한다. 이는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지호가 좋다는 의미다.
지호는 더욱 강렬했다. '친구로 지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말 속에는 연인이 아닌 친구로 지내기는 어렵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이미 첫 만남부터 강렬한 끌림이 있었던 이들은 그렇게 쉽게 잊힐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서로의 연락처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관계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 몰래 들어온 정인의 동생 재인(주민경)으로 인해 눈이 오는 날 수영고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그들을 봤다. 기석과 지호가 함께 농구를 한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정인의 미묘한 표정 속에 이미 이 갈등은 강렬하게 점화되고 있었다. 첫 회부터 불안은 시작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이들은 무모하게 서로를 갈구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 정인의 친구인 영주(이상희)가 지금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면 불륜이라는 발언은 이들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서로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관계들 속에서 균열은 시작되었다.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 파열음들 속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는 관계들 속에 불안한 사랑이 어떻게 표현되어질지 그게 <봄밤>의 핵심이다. 최소한 결말을 맺기 전까지 어떤 전개를 할 것인지 첫 회 모두 보여주었다. 정석대로 찍은 이 드라마는 그렇게 안판석 피디와 김은 작가의 스타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