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기존 히어로물의 틀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역발상이 던진 파장은 의외로 크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시작은 슈퍼맨을 보는 듯하다. 지구를 지키는 강력한 영웅의 등장처럼 보이는 어린 소년은 하지만 슈퍼맨과는 전혀 달랐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초반 분위기는 슈퍼맨이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부부에게 마치 하늘의 선물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비행체가 집 근처 숲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갓난아이가 타고 있었다. 토리(엘리자베스 뱅크스)와 카일(데이비드 덴맨) 부부는 브랜드(잭슨 A. 던)를 애지중지 키웠다.
너무 평범했던 이들 가족에게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왔다. 너무 똑똑한 아이 브랜드 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부부는 알고 있었다. 지구가 아닌 외계에서 온 아이. 단 한 번도 다치지도 피도 흘리지 않은 아이였지만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그날이 오기 전에는 말이다.
뭔지 알 수 없는 반응에 이끌려 헛간으로 향한 브랜드. 토리와 카일 부부가 헛간에 브랜드가 가지 못하게 한 이유는 그 안에 숨겨진 비밀 때문이었다. 헛간 지하에는 브랜드가 타고 온 우주선이 존재했다. 브랜드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리지 않기 위해 숨겨 두었지만, 10년이 흐른 후 부쩍 브랜드는 뭔가에 이끌려 그곳으로 향하는 일이 늘어났다.
그날 이후 브랜드는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 착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던 아이가 이상한 문양을 그리며 점점 변해갔다. 너무 똑똑해서 따돌림을 받던 브랜드는 몸 속에 잠재해 있던 악마성은 갑자기 뛰쳐나왔다. 우주선의 신호를 받으며 숨겨져 있던 폭력성은 잔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손을 잡아준 친구를 엉망으로 만들고, 따지러 온 친구 어머니에게 잔인한 복수를 하는 브랜드는 그 또래 아이의 모습도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알기 시작하며 그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 되었다. 브랜드의 양 아버지와 양 어머니는 불안했다.
그 아이가 우주에서 왔다는 사실을 그들만 알고 있다. 아이가 자라며 단 한 번도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 기괴할 수밖에 없다. 그런 브랜드가 침대 밑에 숨겨둔 낙서들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 여성 사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해부 사진을 보는 순간 불안함을 느낀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고 싶었다.
극적인 변화를 감지한 것은 브랜드의 생일이었다. 토리 여동생 부부가 총을 선물로 전달하며 미묘하지만 완벽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어린 브랜드에게 총은 안 된다며 빼앗는 카일과 거칠게 거부하는 브랜드의 상황은 긴장감이 극대화되는 순간이었다.
브랜드가 왜 이렇게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을까? 사춘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브랜드가 변화기 시작한 것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선에서 나오는 신호는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잡음일 수 있지만 같은 종족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브랜드에게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슈퍼맨과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별에서는 특별한 힘이 아닌 평범한 존재이지만 지구에 와서 강력한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우주선이었다. 우주선에 스치며 피를 흘리는 모습 속에서 브랜드는 슈퍼맨의 서사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달리 보면, 슈퍼맨 역시 브랜드가 될 수도 있었을 수 있다. 클라크 켄트라 불린 하지만 그의 고향 행성인 크립톤 행성에서 불리던 이름 칼엘이 아닌 다른 파괴자가 지구로 오게 되었다면 브랜드처럼 변했을 수도 있다. 그런 변주에서 <더 보이>는 탄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슈퍼히어로가 지배하는 세상에 안티히어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돋아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더 보이>는 아주 단순한 변주를 통해 강렬함을 선사하고 있다. 단순한 안티 히어로가 아닌 잔인한 괴물이 될 수도 있었던 슈퍼히어로에 대한 이야기는 범람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니 말이다.
<더 보이>는 분명 <슈퍼맨>의 서사를 변주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캐릭터들은 <오멘>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 모든 서사와 어린 악마인 데미안은 바로 브랜드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게 만든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오멘>을 오마쥬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선한 인간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 역시 데미안처럼 태어날 때부터 악했을 뿐이다. 그저 다른 사람에 의해 선한 인간처럼 키워졌을 뿐 그들은 단 한 번도 본성이 바뀐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둘은 참 많이 닮았다. 데미안이 '적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도 '안티 히어로' 영화인 <더 보이>와 참 닮았다.
영화는 무척이나 잔인하다. 어린 아이가 저지르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 본능은 섬뜩함으로 자리한다. 한 끗 차이인 히어로에 대한 가치 전복은 그래서 흥미롭다. 보는 이들에 따라 다양한 함의와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절대 무적인 존재.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그리고 그 지배자는 세상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며들어 살아간다. <오멘>의 21세기 판 영화인 <더 보이>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모든 가치를 뒤집으려 노력했다. 그 가치 전복의 힘은 새로움을 위한 파괴로 다가온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듯 말이다. 아쉬움이 많지만 감독의 변주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