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스티브 유에 대해 비자 발급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F-4 비자를 자신이 살던 지역인 LA 총영사에 신청했던 스티브 유는 발급할 수 없다고 하자 법정에 호소했다. '재외국민법'에 의해 군대를 기피한 자도 만 38세가 되면 비자 신청을 반려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악의적으로 군면제를 받기 위해 국가까지 바꾼 자다. 이에 대한 대중적인 분노는 클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대중을 농락한 죄는 17년이 지난 후에도 크게 달라질 수 없다.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지 그 표본 모델이 바로 스티브 유였다. 병역 기피자에 대한 사회적 형벌의 기준이었다는 의미다.
"태국의 스물한 살 청년들은 매년 4월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서 울고 웃습니다. 그들은 항아리같이 생긴 동그란 통에 손을 넣고 제비를 뽑는데… '입대' 빨간색을 뽑은 사람의 표정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게 어두워지고, '면제' 검은색을 뽑은 사람은 만세를 부르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합니다. 태국의 추첨 징병제 현장의 모습입니다"
"한해 필요한 군인의 숫자를 정해놓고 지원자를 모집한 뒤에 부족할 경우에는 전국의 만 21세 남성에게 소집령을 내려 제비뽑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승려가 되어버린 사람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유명 아이돌 멤버도 피할 수 없는 절차라고 하는데…
이것도 어찌 보면 제가 며칠 전 앵커브리핑에서 소개해드린 지극히 공정한 이른바 '뺑뺑이'의 방식을 따르고 있으니…
희비는 엇갈리겠지만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하는군요"
태국의 입대 풍경은 재미있다. 군에 필요한 이가 생기면 그해 년도 청년들을 모아 제비뽑기를 한다. 필요한 인원이 확정되면 끝이다. 둘 중 하나로 판명이 나는 태국의 입대 제도에는 그 어떤 특권도 존재할 수 없다. 스님이 되어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도 이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칙이 정해지고 누구에게도 특혜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태국 국민들은 군입대와 관련해 불평이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운에 맡기는 그 상황 속에 특권이 도사리지 않으면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물론 태국과 대한민국의 군은 다르다. 여전히 남과 북은 대립 관계이니 말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누구나 다 가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누구나 다 예외 없이 가지는 않는 곳… 국민의 4대 의무이니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당연히 가야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특별한 사유를 어떻게든 만들어내서 끝내는 가지 않는 곳…
그래서 누구는 몸무게를 늘리거나 줄이고, 누구는 영 생소한 질환을 이유를 들고…"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특별한 사유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신의 아들이 태어나는 곳', 군대… 17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입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지로 모를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남자가 있습니다. 그 17년이라는 시간은 대중과의 약속을 어긴 그 스스로가 불러들인 재앙이기도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그때부터도 그를 막을 이유가 없었다지만 법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그도 모를 리 없을 터… 이미 그는 전성기를 잃어버린 나이인 데다가 특정인에게만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동정론도 있긴 있지만 아직도 여론은 싸늘함이 더 큽니다"
"어찌 됐든 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날의 공항 풍경은 어떠할까… 적어도 매년 4월 스물한 살이 된 청년들이 항아리에 손을 넣어 제비를 뽑고 종이 색깔에 따라서 울고 웃는 풍경보다는 확실히 덜 아름다울 것 같다는…"
국민의 4대 의무이지만 국회의원과 법관, 경제인 등 스스로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이라 자처하는 자들 중 군을 다녀온 비율이 현저히 낮다. 스스로 지키지 않는 의무를 국민들에게만 강요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온갖 방식을 동원해 군 기피를 하고 홀로 도도한 채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에 대한 분노는 그래서 당연하다.
스티브 유는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스타였다. 춤과 노래, 랩까지 당시 누구도 대결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는 군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외쳐왔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 '바른 청년'이라는 호평까지 들었던 그는 입대 한 달을 앞두고 각서까지 쓰고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갔다.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간 그는 그곳에서 미국인 스티브 유가 되었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스티브 유가 되어 당당하게 입국을 노렸다. 하지만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스티브 유는 더는 한국땅을 밟을 수가 없었다. 대중을 기만한 자에 대한 형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여전히 미국인 스티브 유를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팬은 존재한다. 그 수가 적다고 해도 스티브 유를 좋아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기이하기는 하다. 그 어떤 배신의 칼날 속에서도 여전히 지지를 보낸다는 것은 기괴함으로 다가올 정도니 말이다. 스티브 유가 당장 국내에 들어오기는 어렵다.
그가 신청한 F-4는 철저하게 국내에서 돈벌이를 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다른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에 입국을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한국으로 귀화하는 것도 아닌 공연 활동 등 경제 활동이 가능한 F-4 비자만 원하고 있다. 미국인으로 국내에서 돈벌이를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만 38살이 지나자 인터넷 방송을 통해 국내에 들어가 입대를 해서라도 지난 과오를 씻고 싶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로 입대를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음을 알고 한 쇼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렀다. 스티브 유는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것이 없음을 보여주는 사과 쇼였다.
중국에서도 돈을 잘 벌었다는 스티브 유가 왜 국내에 들어와 돈벌이를 하려 하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 그가 누렸던 인기를 잊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까지만 살았던 나라. 그래서 손쉽게 미국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스티브 유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곳인 것일까?
당장 많은 이들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스티브 유에게 다시 입국 불허 조처를 하라는 분노의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팬들은 스티브 유를 환영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스티브 유의 입국과 관련해 부정적이다.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취하는 자들에 대한 반감은 스티브 유를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 유는 힘들다. 국민 감정에 반하는 자는 '재외국민법'에서도 만 38세 이후에도 비자를 받을 수 없다. 이를 적용할 것인지는 관련 부처의 선택일 뿐이다. 원칙을 무시하는 특권 의식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스티브 유 사건을 통해 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