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풍경, 진곶내 해변
청정과의 공존을 얘기하면서도 말뿐인 제주도의 현실입니다. 자연파괴와 더불어 무분별한 개발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래도 숨을 쉬고 있는 이유는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곳들이 제주도 곳곳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존재를 알아야 가치를 느끼게 되고 보존의 이유와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의 발길로 인하여 훼손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은 장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제주도의 풍경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올레길을 걷다가 숲길을 따라 바다로 이어진 조그마한 계곡의 통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조금 험하긴 했지만 조심히 숲을 헤치고 계곡으로 내려가 봅니다.
제주도의 계곡들은 대부분 건천이라 지하를 타고 흘러내려온 한라산의 물줄기는 바다 가까이에 이르러 용천수로 솟아나거나 근처 계곡에서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립니다. 이곳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위에서는 알 수 없던 시원한 물줄기가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청량감을 가득 담고 있는 시원한 물줄기는 그대로 바다로 흘러 내려갑니다. 그 계곡의 끝에는 기괴한 석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위압감과 함께 극치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딱 정해진 지명은 없는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 이곳을 ‘진곶내’라고 부른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제주도 곳곳에 있는 명소들이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그 본연의 모습들을 잃어가고 있지만 이곳은 꼭꼭 숨겨져 있는 탓에 신비로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몽돌로 된 해변의 한가운데에는 ‘내가 이곳의 주인이노라’ 외치는 듯한 커다란 바위 하나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참으로 자연의 신비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변 가운데에 이런 바위가 있을 수 있을까.
바위 옆으로 돌아가 보니 어디선가 눈에 익은 형상, 바로 바다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왼쪽에서 보나 오른쪽에서 보나 틀림없이 바다사자의 모습, 또렷한 머리와 꼬리의 모습에 움직이는 방향까지, 바다에서 뭍으로 기어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바다사자의 모습을 꼭 빼 닮았습니다.
깎아지른 절벽이 해변을 감싸고 있어 이국적인 매력까지 한껏 품고 있는 진곶내(?) 해변, 제주도에서도 흔하지 않은 절경 중 한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이런 곳도 있구나 하고 봐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