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프 베이커리(Proof Bakery)
공부 열심히 해 명문대 간 모범생
대학 졸업 후 목표 잃어 가슴앓이
직업 전전하다 우연히 빵집 근무
일 고되지만 처음으로 행복 느껴
나이 서른에 용기, 요리학교 입학
"나 만의 빵을 만들겠다" 창업 결심
광고도 없이 맛으로만 승부 1년
LA타임스가 극찬한 맛집에 등극
왜였을까. 그 작은 동네 빵집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까닭은.
제법 쌀쌀해진 겨울 아침, 평범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지극히 작은 공간, 10여명이 앉을까 말까한 서너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는 그곳에 마법처럼 자욱하게 번지는 빵 냄새, 그 위를 가볍게 유영하는 알싸한 커피 향까지. 이 소박하지만 근사한 동네빵집 프루프 베이커리(Proof Bakery)의 주인장은 한인2세 마나영(40)씨. 문을 연지 1년 만에 LA타임스와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뤄 주중에도 줄 설 각오를 하고 가게를 찾아야 할 만큼 LA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빵 아니면 죽고 못 살아 오로지 외길 인생을 달려왔다는 '뻔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아주 먼 길을 돌아 오랜 시간 끝 이곳까지 왔다기에 더 마음 가는 나영씨를 빵 굽는 냄새로 가득 찬 프루프 베이커리 주방에서 만나봤다.
LA에서 태어나 명문사립 코넬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그녀는 학창시절부터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그녀가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는 꽤 길고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입시준비로, 대학에 와서도 공부만 하느라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그 흔한 파트타임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이렇다 할 사회경험도 없었고요. 그래서 졸업 후 목표를 상실한 채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녀에겐 10대 때도 겪지 않았던(그래서 겪어야만 했을지도 모를)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고 그 긴 방황이 끝나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졸업 후인 1997년 그녀는 무작정 친한 친구가 있는 버클리로 가 식당과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근무했고 1999년부터 1년간은 도쿄에서 영어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와 파트타임 사무직으로 일하다 우연히 시작한 게 대형 베이커리에서 빵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근무시간은 밤 10시부터 오전 6시. 낮밤을 바꿔 생활해야했고 육체적으로도 고단했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빵 제조과정이 예술적이고 창의적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매력을 느꼈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제가 낮밤을 바꿔 생활하고 육체적으로도 너무 힘든 일을 한다는 걸 알고 걱정이 크셨죠. 그래도 묵묵히 저를 믿고 기다려주셨죠."
그러면서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불혹에 접어든, 씩씩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그녀가 부모님 이야기를 하자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쩌랴. 세상 모든 자식들, 특히나 부모의 고된 타향살이 옆에서 지켜봤을 2세들이 가지는 부모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 미안함이 주마등처럼 교차하는 순간이었을 터. 짐작할 수 없는 가슴 먹먹한 애잔함이 그녀의 눈가에 내려앉았다.
#길을 묻다, 그리고 찾다
그래서 '번듯한' 직장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TV방송국에서 편집자로 풀타임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열정 없이 뛰어든 직장에서 길을 찾을 리 만무. 결국 1년 만에 사직, 다시 4년이라는 방황 끝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기위해 그녀는 서른이 되던 2005년 명문 요리학교인 CIA 나파밸리 캠퍼스에 입학해 파티셰(제과.제빵 요리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리고 나파밸리의 유명 호텔에서 1년간 근무하다 2007년 LA로 돌아왔다. LA에 돌아온 뒤 유명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원했던 건 따로 있었다.
"저만의 빵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하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제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볼 때 행복하다는 것도요. 그러면서 제 베이커리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목표가 생기자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비영리재단에서 운영하는 창업 클래스 수강을 시작으로 LA식당사업 리서치와 사업계획서 작성, 가게 리스 등 1년여를 창업 준비에 매달린 끝에 2010년 가을 지금의 프루프를 오픈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간판도, 요즘 유행하는 트렌디한 인테리어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동네 빵집이었다.
"자금이 많지도 않았고 그냥 맛으로 승부하면 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특별한 광고도 안했죠. 덕분에 처음엔 하루 크루아상 10개 팔기도 힘들었어요.(웃음)"
#동네빵집의 기적
그러나 얼마안가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가격의 30%이상이 재료비일 만큼 좋은 재료를 사용해 만든 그녀의 특별한 빵과 케이크, 쿠키는 오픈 1년도 안 돼 프루프가 위치한 앳워터빌리지(Atwater Village)는 물론 LA전역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평균 700여명이 다녀갈 만큼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특히 프루프는 크루아상이 베스트셀러인데 하루 평균 300여 개를 부지런히 만들어도 점심 전에 동이 날만큼 인기다. 덕분에 프루프는 오픈 1년 만에 LA타임스는 물론 뉴욕타임스에까지 맛있는 빵집으로 이름을 올렸고 연매출도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매장 규모 400스퀘어피트 남짓한 동네 빵집의 기적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성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른 오전부터 오픈해야 하는 가게 속성상 그녀는 오전 4시에 기상, 새벽부터 가게에 나와 빵을 만든다. 게다가 물건주문부터 직원관리와 매상관리까지 1인 다역을 해내느라 매일 수면부족에 시달릴 만큼 24시간 빵집에 매달려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자기 베이커리나 카페를 하겠다고 별 생각 없이 덤벼드는 이들이 많은데 그러면 망하는 지름길이에요. 정말 이 분야는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죠.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직업인 데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거든요.(웃음) 관심이 있다면 일단 베이커리에 가서 직접 경험해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요즘 그녀는 이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생각했던 제대로 된 식사용 빵을 이용한 맛있는 샌드위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을 열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인생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것 같아요. 온실 속 화초보다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넘어지기도 하면서 인생의 자양분을 쌓아야 비로소 건강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도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았지만요.(웃음)"
빵집 주인장에게서 인생 한 수를 배운다. 인생이란 바둑판위에서 실패와 좌절은 끝이 아닌 새로운 반전을 만들 지극한 신의 한수일지도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