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언에 이끌려 궁으로 돌아간 원득이는 이제 더는 원득이가 아닌 왕세자 율로 돌아갔다. 백일 동안의 꿈과 같은 시간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자신은 한 번도 원하지 않았던 자리였다. 궁이 반갑거나 편할 수 없는 율이에게 백일 동안의 외출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음모와 진심 사이;
왕세자 앞세운 김차언의 묘략, 이를 능가할 율의 한 수는 등장할 수 있을까?
살수들에 둘러 싸인 원득이는 의외의 상황과 마주해야 했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홍심이를 찾기 위해 나섰다 당한 상황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좌상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왕세자이니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궁에는 세자빈이 아이를 잉태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기억에는 없다고 하지만 언뜻 언뜻 떠올랐던 궁궐의 이미지는 분명한 사실이다. 직접 보지 않은 상황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원득이 역시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궁궐로 돌아간 원득이는 오직 김차언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차언이 선택한 왕세자는 가장 좋은 패가 되었다. 기억을 잃은 왕세자는 김차언이 가장 원했던 모습이다. 문무가 특출나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인물이 왕세자였다. 왕은 자신이 손쉽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왕세자는 왕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장 큰 적이었던 왕세자를 그래서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살수의 표적이 된 후 그는 반전의 카드를 찾았다. 중전의 아들인 서원대군이 새로운 세자로 책봉되면 모든 것은 뒤틀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딸인 세자빈을 통해 대리청정을 꿈꾸었던 김차언의 야망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욕망마저 놓칠 수 있는 순간 기회를 잡은 것이 바로 왕세자 카드다. 그가 기억을 잃은 채 송주현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안 김차언은 즉시 그 길로 원득이라 불렸던 율을 찾았다. 그리고 잃은 기억 속에 가짜 기억을 심었다. 세자빈의 아이가 왕세자의 것이라 믿게 하고, 중전의 모략으로 왕세자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했던 역모를 중전의 짓으로 몰아넣은 김차언은 모든 것을 다시 되찾았다 확신했다. 어리숙한 왕세자가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그런 자를 이용해 자신이 대리청정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것이지 지식까지 잃지 않은 왕세자는 김차언의 뜻대로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납치된 홍심이는 오라버니에게 돌아갔다. 오라버니 무연에 의해 구해진 것이다. 김차언과 살수들이 여동생을 해할 것이 두려워 한 행동이었다. 홍심은 오라버니를 만나게 된 것은 행복하지만 낭군과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은 감당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낭군을 데려오겠다는 홍심이게 무연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원득이란 사내는 바로 왕세자였다고 말이다. 귀한 집 도령일 것이란 확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왕세자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서로 돌아가지도 못한 홍심은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김차언의 사위가 자신의 낭군이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렇게 원득이가 자신을 위해 사준 신도 집어 던졌다. 하지만 이미 마음 깊은 속에 자리한 원득이를 잊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흙이 잔뜩 묻어버린 꽃신을 안고 서럽게 우는 홍심이는 그렇게 처연했다. 원수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자신에 대한 회한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율이와 이서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점을 쳐주던 할머니가 오직 한 사람만 기다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점괘는 정확했다.
율이와 이서는 서로 사랑했고,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김차언이 반란을 도모하며 모든 것이 뒤틀리게 되었다. 이서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렇게 김차언을 피해 홍심이가 되어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김차언만 없었다면 그들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다.
운명처럼 홍심으로 살아가던 이서에게 기억을 잃은 율이는 원득이가 되어 나타났다. 단순한 우연이라 할 수 없는 운명은 그렇게 그들을 부부의 연으로 이끌었다. 홍심이는 그래서 서글펐다. 원득이가 율이 아닌 그저 원득이었고, 자신이 이서가 아닌 홍심이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자책과 같은 원망이었다.
원수의 아들이자 왕세자를 더는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왕세자 신분으로 돌아간 원득이는 좀처럼 홍심이를 잊을 수가 없다. 홍심이 역시 중인이 아닌 양반집 규수일 가능성은 충분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홍심이 이서라는 사실을 원득이는 아직 모른다.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이서는 어떨까? 홍심과 달리 율이로서는 운명이라며 반길 것이다.
매 순간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 홍심이로 인해 왕세자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말을 타고 홀로 홍심이가 있는 송주현으로 향했다. 오직 홍심이를 보기 위한 그 선택은 과연 이후 상황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세자빈이 잉태한 아이가 왕세자와 상관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
가장 중요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이는 무연과 양내관이다. 양내관은 김차언의 비리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양내관은 정제윤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극적인 순간 양내관이 등장해 김차언을 궁지에 몰아넣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웃음이 사라지고 슬픔만 지배한 <백일의 낭군님>은 아쉬웠다. 어쩔 수 없는 전개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슬픔이지만 <백일의 낭군님>을 시청자들이 기다린 것은 웃음 때문이다. 사극이지만 현대적 언어와 감성을 품은 퓨전으로 제대로 웃음 코드를 맞췄기 때문이다. 한 회 눈물이 지배했다면 이제는 다시 웃음을 되찾는 이야기로 마무리 되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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