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사망. 혜자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과 같았다. 그런 혜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진 재능을 발휘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계를 사용하면 자신이 어떤 상황이 되는지 알면서도 혜자는 한없이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25살 혜자 70살 혜자;
손자보다 아들을 선택한 준하 할머니와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혜자
25살 혜자는 마음이 들떴다. 우연이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준하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아직 사랑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사랑이기를 바라고 싶다. 갑자기 훅 들어오듯 다가온 사랑에 어쩔 줄 모르는 혜자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첫 사랑 선배에게 고백하던 날 못 볼 꼴을 보였던 혜자의 사랑은 아나운서가 되는 길 만큼이나 힘겹기만 했다. 친구들에게 준하와의 묘한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잠시, 너무 미운 아나운서가 된 후배와 준하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준하도 별 수 없는 한심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 혜자의 마음을 다시 돌려 놓은 것은 준하의 집에서 밥을 먹은 후였다. 준하 할머니가 박스를 끌고 가는 모습에 도왔다. 천성이 맑은 혜자는 준하 할머니가 아니어도 도왔을 것이다. 그렇게 준하 할머니에 이끌려 집에서 밥을 먹던 혜자는 의도하지 않게 돌아온 준하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할머니가 싸준 파김치를 가져다 준다며 따라 나선 준하는 마을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 위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잠시 첫 키스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혜자가 궁금해 했던 이야기를 듣게 된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나운서가 된 후배가 사귀자는 말에 거절을 했다는 말이 혜자는 너무 좋았다.
진한 썸의 단계로 넘어가기 시작한 혜자는 그저 행복했다. 아나운서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현실이 막막하기도 하지만, 사랑은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준하도 혜자가 좋다. 비슷한 환경에서 꾸밈 없이 자라 해맑은 혜자가 좋다.
자신을 위해 시간을 되돌리겠다며 나섰다가 이마를 다친 술 취한 혜자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혜자와 함께 건물 옥상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는 그 모든 순간들이 특별했다. 하지만 이들의 그 달달함은 그리 오래갈 수 없었다.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엄마에게 혼쭐이 나기는 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자신의 길이 아닌 길을 걸으며 힘겨워하던 그 우매한 짓을 멈출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뭘 할 것인지 알 수 없는 25살 혜자로서는 모든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여전히 멍하기만 했던 어느 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정신은 반쯤 내려 놓은 채 병원을 향한 가족들은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수술실로 실려간 아버지는 그렇게 가족들과 이별을 하고 말았다.
수술실 앞에서 표정이 없이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과 함께 사망 소식을 전하러 나온 의사의 발언. 오열하는 어머니와 넋을 잃은 오빠. 이 모든 상황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미친 듯 집으로 뛰어간 혜자는 시계를 찾았다. 준하가 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찾아 열심히 시간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마음껏 시간을 끌어다 쓰다 웃자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시간을 돌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되돌려 보지만 언제나 아버지는 자신보다 한 발 앞서 사고를 당한다.
무한루프에 빠진 듯 아무리 시간을 돌려도 아버지의 사고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한 혜자에게 준하는 따뜻한 위로 용기를 줬다. 그 용기에 힘입어 다시 시작된 시간 돌리기는 수많은 사고를 반복하다 겨우 아버지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미친듯 이어진 그 반복의 끝은 처참함이었다.
아버지를 살리는데 성공했지만 25살 혜자는 70살 혜자로 변해버렸다. 자신이 변한지도 모른 채 살아있는 아버지를 보고 반갑고 서러워 울던 혜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고 말았다. 가족들 역시 70살 혜자를 쉽게 알아보지는 못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가족이 서운하기도 했다. 급격하게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감당할 수 없었던 혜자는 그렇게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를 구하기는 했지만 그 대가로 부모님보다 더 나이 든 모습이 된 혜자는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혜자가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국수집 사장에게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독일에 놀러 갔다는 이야기가 전부다. 자신이 변한 모습을 감추던 과정에서 나온 거짓말을 준하는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헛헛한 마음을 품고 집으로 간 준하는 아버지를 보고 분노했다.
망나니라는 표현조차 부족해 보이는 아버지가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있다. 자신이 없는 동안 할머니는 아들을 그렇게 건사해왔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간이 자신이 사는 곳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다. 분노를 삭히지 못한 준하는 거짓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자해를 하고 가정 폭력으로 신고해 구치소에 가둬버린 준하는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여전히 가족으로 존재하는 아버지의 폭주를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어딘가 갔다 온 할머니는 일하러 나가는 준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준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차가웠고, 할머니는 마치 깊은 잠을 자는 듯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장례식장에 나타난 아버지는 준하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 함께 온 형사들은 할머니가 모든 사실을 말해줬다고 한다.
할머니에게 손자는 너무 소중한 존재였다. 착실하고 예쁜 손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버릴 수 없었던 것도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그 "미안하다" 말은 아들을 위해 손자를 배신한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손자보다는 못난 아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다.
닫힌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혜자는 시계를 고쳐보려 노력하지만 고칠 수 없었다. 이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는 의미와 같았다. 이렇게 늙어버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만 깊어지는 혜자. 나이든 모습으로 준하를 찾는 혜자는 과연 삶의 의미를 찾고 다시 25살 혜자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의 의미를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눈이 부시게>는 마법과 같은 이야기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치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전혀 다르게 사용되는 그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일깨우고 있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값지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