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를 원작으로 리메이크 한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16회로 종영되었다. 왕이란 무엇이고 왕의 역할은 어때야 하는지 되묻는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로웠다. 결국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자. 그 왕관의 무게는 곧 백성임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개암 열매 소원;
한 여름 꿈 같았던 왕이 된 남자, 하선과 소운이 남긴 이야기들
도승지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란을 잠재우고 하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도승지가 진평군을 공격하고 죽음을 맞이하며 반란군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절대 내줄 수 없는 패가 스스로 무너지며 왕의 신념만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왕을 굴복시키고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반란을 마무리하려던 대비의 패거리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이 생기며 궁지에 몰린 이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쥔 것은 하선이었다. 비록 반란군 3천에 맞설 궁 군사가 4백에 불과하지만 하선은 묘수를 짜냈다.
하선에게 도승지는 아버지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광대였던 자신을 왕으로 만든 인물이다. 단순하게 왕의 연기를 넘어 진정한 성군이 되는 길을 안내하고, 그렇게 왕이 된 하선에게 충심을 다한 인물이 바로 도승지다. 그런 도승지의 죽음에 오열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도승지의 마지막을 위해 진평군과 신치수를 궁 외부로 내보내는 것까지 감내한 하선은 대비의 편에 선 그들을 제거해가기 시작했다. 절대적으로 약한 상황에서 대비 측 반란군은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변방에 있던 군사를 돌려 보낸 상황에서 왕을 제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상황이라 반란군은 확신했다.
궁으로 반란군이 들어서지만 하선이 짜 놓은 함정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해도 병마사가 도성에 도착했다는 전갈을 받은 하선은 신치수와 반란군을 갈라치기 하고 제거했다. 마지막까지 간사한 신치수를 제거하고, 진평군의 호위무사를 이용해 대비를 궁으로 끌어들인 하선은 사약을 내리며 반란군을 장악했다.
사약을 받은 대비의 죽음으로 모든 것은 달라졌다. 오직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는 왕으로 인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된 조선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대동법이 전국에 걸쳐 이뤄지며 백성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시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던 상황 속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던 것은 후손을 볼 수 없다는 것 뿐이었다.
하선은 중전과 평생 함께 하기 위해 왕의 자리를 내놓았다. 종친을 곁에 두며 선위할 대상을 찾았던 하선은 백성의 편에 선 기성군을 후임으로 간택했다. 용상은 사사로이 탐해선 안 되는 자리라며 스스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내려 놓은 하선의 선택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권력에 미친 정치꾼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도 권력에 미친 정치꾼들의 악랄함을 매번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왕이 전부였던 시절 왕의 자리를 내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설정이지만 말이다.
하선과 평생을 함께 하기 위해 스스로 폐서인을 자청한 중전. 먼저 궁 밖으로 나가 왕을 기다리겠다는 중전은 이제 소운이 되어 평생 한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꿈이었다. 기성군에게 선위를 하고 소운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던 하선을 막아 선 것은 대비의 패거리였다.
하선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 위해 길을 떠난 장무관이 사력을 다해 막아 서기는 했지만 활을 맞은 하선도 장무관도 모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염없이 하선이 오기를 기다리는 소운과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하선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2년이 지났다. 기성군이 왕이 된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태평성대였다. 거리의 광대 패는 이런 태평성대를 일군 왕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는 소운이었다. 그리고 하선의 여동생 달래에게 자신의 가락지를 주는 소운은 그렇게라도 하선과 함께 하고 싶었다.
2년 전 만나기로 했던 하선은 사라졌다. 소운이 선물한 나침반이 현장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하선은 보이지 않았다. 사라진 하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소운은 저잣거리에서 귀한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했다. 2년이 지났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를 기리며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하선이 알려준 개암 나무 열매를 씹으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다. 개암 열매를 깨물자 거짓말처럼 하선이 소운 앞에 나타났다. 꿈일 것이라 생각하며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바란다는 소운에게 눈물을 흘리며 자신 역시 항상 이런 꿈을 꾸었다는 하선은 행복했다.
하선과 소운은 두 손을 꼭 맞잡고 함께 할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다. 임금이 죽고 임금을 닮은 광대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는 자막이 사족처럼 다가올 정도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영화 <광해>와는 전혀 달랐던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보여준 재미였다.
아쉬움도 분명 존재한다. 마지막 회의 전개 과정은 여전히 쫓기듯 이뤄지며 전체적인 완성도를 떨어트렸다. 전체 회당 분량 분배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2년의 공백 과정을 만드는 것 역시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 장면을 설정하고 앞선 이야기에 살을 붙이다 보니 엉성한 흐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회의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왕이 된 남자>는 매력적인 드라마였다. 여진구라는 절대적인 존재감을 가진 배우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던 드라마였다.
왕이라는 자리에 대한 수많은 의문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 권력이란 결국 국민들을 위한 힘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했다. 가벼운 상황극에 무거운 주제를 얹어 효과적으로 풀어낸 <왕이 된 남자>는 여진구와 이세영의 행복 못지 않게 다양한 의미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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