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만에 군과 경찰은 사죄를 했다. 그렇다고 그 원한이 전부 사라질 수는 없다. 제주도를 죽음의 섬으로 만들었던 그날 그렇게 광기에 사로잡힌 그날 제주에 살던 수많은 이들은 군과 경찰, 그리고 극우집단들에게 학살을 당했다. 비공식적으로 3만이 넘는 제주도민들은 한날한시에 사망했다.
빨갱이를 앞세워 학살을 했던 국가권력. 그들로 인해 어린 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들까지 제주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로 무조건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제주도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이는 있었다.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던진 독일인 쉰들러처럼 말이다.
"이 차…내가 왜 안 팔았지? 열 명은 더 구했을 거야 열 명은 더 살릴 수 있었어- 영화|쉰들러 리스트.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타까움을 놓지 못했습니다. 스필버그의 영화로 잘 알려진 오스카 쉰들러. 그는 원래 부패한 기업가였으나 유대인의 참혹한 실상을 마주한 뒤에 자신의 권력과 재산을 이용해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구해내고자 합니다"
""박해받는 유대인 1200명의 잊을 수 없는 생명의 은인" 이렇게 비문이 적힌 쉰들러의 묘에는 그의 의로운 행동을 기억하는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쉰들러 같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4·3의 광풍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유대인인 스필버그에 의해 만들어진 <쉰들러 리스트>는 자신들 조상을 위한 추모이자 기록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저 학살의 기록만이 아니라 유대인을 살린 독일인의 이야기를 통해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까지 담았으니 말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국내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부패한 독일인 사업가 쉰들러는 히틀러의 광기에 맞서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력과 재산을 이용했다. 아우슈비츠로 이송되는 사람들을 필사적으로 구해냈다. 박해받는 유대인 1200명을 구한 쉰들러. 그의 무덤에 적힌 비문은 그렇게 역사가 되어 있다.
"제주 일선 경찰서에는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총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서류에 의해서, 주민 학살을 공식화하는 지시였지만… 당시에 성산포 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은 상부의 명령서를 되돌려 보내면서 사유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당하므로 불이행"- 문형순, 당시 성산포경찰서장. 굵은 글씨로 휘갈긴 이 글자 덕분에 200여 명의 제주도민은 참극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확인된 제주의 사망자만 1만 4000여 명. 비공식으로는 3만 명을 헤아리는… 그래서 제주에선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내는 집들이 넘쳐나게 된 비극… 문형순 서장 역시 과거의 쉰들러처럼 살리지 못한 이들을 떠올리면서 애통해했을까…"
우리에게도 쉰들러 같은 인물은 존재했다. 제주 일선 경찰서에 '예비검속'이라는 명분으로 총살 명령이 내려온 상황에서 성산포 경찰서장이었던 문형순은 상부의 명령서에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는 글로 200여 명의 제주도민을 구해냈다. 광기에 사로잡힌 시절 이 결정은 결코 쉬울 수 없었다.
경찰서장이라 해도 자신들의 명령을 어기며 같이 총살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형순 당시 성산포 경찰서장의 이 용기는 200여 명의 성산포 주민들의 목숨을 구했다. 확인된 제주 사망자만 1만 4000여 명, 비공식으로는 3만 명이 넘는 그 광기의 시절 그는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
"그날 이후 무려 71년의 세월. 군과 경찰은 오늘에야 처음으로 제주를 향해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 국방부.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의 영전에 머리 숙여 애도"- 민갑룡 경찰청장
툭툭…소리라도 들리는 듯. 찬란한 봄은 개화 중이지만 아직 바람 많은 그곳에는 걷지 않은 걸음이 남아있었으니… 우리는 너무나도 늦게, 첫 발을 떼게 된 셈입니다"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했던 사람들… '부당하므로 불이행'했던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죽은 이는 부디 평화로이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제주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에 새겨진 추모글"
부당한 일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이들에게 상부의 지시는 어길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더욱 학살이 자행되던 시절 죽음의 공포를 경찰서장이라고 몰랐을 수는 없다. 그 역시 자신과 가족들 역시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당당하게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고 상부의 지시를 거절한 그 용기. 그로 인해 많은 제주도민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문형순과 같은 인물들이 더 있었다면 3만이 넘는 제주도민들의 학살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국방부와 경찰의 사죄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엄청난 용기를 내야 하지만 그런 용기가 곧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우린 역사를 통해 배우고 있다. 유대인을 구한 독일인 쉰들러와 제주도민을 구한 경찰서장 문형순. 그들의 용기와 결단은 그렇게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적폐와 맞서고 미래를 살아갈 누군가에게 건강한 사회를 물려주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