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사망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극적인 결과가 나왔다. 당연해야 할 선거에서 극적인 결과는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故 노회찬 의원의 뒤를 이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떠난 후 헛헛함을 느끼는 이들은 많다.
정치판은 역겹다. 정치꾼들만 득실거릴 뿐 정치인을 찾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막말은 일상인 그곳에서 제대로 된 정치인 하나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더욱 극적이고 특별할 수밖에 없다. 노회찬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와 큰 슬픔을 안겼다.
"노회찬. 한 사람에 대해,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이보다 며칠 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했어야 했으나 당시는 선거전이 한창이었고, 저의 앵커브리핑이 선거전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야 했으므로 선거가 끝난 오늘에야 내놓게 되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선거에서 이겨보겠다고 막말을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은 과연 그들은 인간이기는 할까 하는 고민이었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는데 뒤늦게 대중들이 알게 되는 것인지 말이다.
선거철과 관련되어 노회찬의 죽음에 대해 조롱하는 발언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다는 손석희 앵커는 선거가 끝난 후 마음 속에 담아 둔 속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누가 손 앵커에게 뭐라 할 이는 없다. 오롯이 손 앵커의 진심이 담긴 앵커브리핑이라는 점에서 더욱 신뢰할 수 있었다.
"제가 학교에서 몇 푼 거리 안 되는 지식을 팔고 있던 시절에 저는 그를 두 어 번 저의 수업 시간에 초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저도 요령을 부리느라 그를 불러 저의 하루 치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노동을 줄여보겠다는 심산도 없지 않았지요. 저의 얕은 생각을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주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까지 그는 저의 강의실을 찾아주었지요.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노 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정치인 노회찬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등진 직후에 전해드렸던 앵커브리핑에서 저는 그와의 몇 가지 인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그의 첫 텔레비전 토론과 마지막 인터뷰의 진행자가 저였다는 것 등등…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인연이라기보다는 그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을 터이고… 그런 몇 가지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그가 가졌던 현실정치의 고민마저 다 알아채고 있었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손 앵커와 동갑내기였던 노회찬 의원. 토론 프로그램의 첫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이었던 노 의원에 대한 손 앵커의 신뢰는 컸다. 방송을 떠나 잠시 대학에 있던 그가 노 의원을 그토록 찾았던 것만 봐도 그 신뢰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노 의원 역시 손 앵커에 대한 믿음이 컸음을 그들의 관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손 앵커가 학생들에게 노 의원을 평가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말에 공감했을 것이다.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그렇게 평생을 세상의 약자 편에 섰던 인물이다. 양복 몇 벌이 그의 모든 것이었던 그가 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 다른 세파에 떠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 거리낌 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즉,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돈을 받은 것을 비판하려는 이들은 비판해도 된다. 그 자체를 두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 의원은 이를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어려운 노동 환경과 그들을 돕는데 평생을 함께 한 그는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사용했다.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편해하지 않았던 노 의원에게 정치자금은 그렇게 그의 목을 조이는 무기가 되었다.
노 의원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대목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역겨운 자들의 막말 속에 자신을 돌아보는 그 어떤 진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노 의원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히 그들이 노 의원의 삶을 평가할 수 있을까? 절대 노 의원의 삶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들에게 그의 결단이 우습게 보였을 수도 있다.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해도 능글맞고 뻔뻔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고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온 조롱이었을 것이다. 부패한 자들이 보일 수 있는 공세적 저항의 방식이니 말이다.
이날 앵커브리핑은 마무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애써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모습 속에 이제는 정말 떠나보내야만 하는 친구에 대한 애절함이 손석희 앵커의 모습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진심을 담은 손 앵커의 노회찬 의원에 대한 마지막 작별 인사는 그래서 많은 이들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 부패한 정권을 무너트렸다. 그리고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적폐 청산이라는 중대한 일을 맡겼지만,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여전히 적폐들은 날을 세우며 자신을 비호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적폐 청산을 막기 위해 온갖 막말과 행동을 다하는 그들의 행태를 우린 목도하고 있다. 여전히 적폐들과 싸움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 적폐 청산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되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