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대화의 희열 2>에 출연했다. 정치인이었고 작가이며 방송인이고 이사장이기도 한 유시민을 다시 방송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은 반갑다. 유희열과 인연으로 출연을 결정했다는 유시민의 삶은 그 자체가 우리의 현대사다. 치열했던 청년 시절과 반항기 많았던 정치인, 그리고 유쾌한 방송인의 모습까지 다채로운 유시민을 다시 본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유일한 당신과 무한한 이야기'라는 부제는 참 적절하다. 유시민이라는 인물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표현으로 보이니 말이다. 반어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유시민의 농익은 이야기는 매력적이었다. 그는 어떻게 글쓰기에 빠지게 되었을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대학 3학년 시절인 1980년은 유시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중요한 시절이었다. 전두환이 권력을 잡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자국민을 학살한 시절이니 말이다. 전국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상황에서 전두환은 광주를 본보기로 삼아 학살을 자행했다.

 

5.18 직전인 80년 5월 17일 학생 유시민은 학교에서 체포되었다. 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총학생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그에게 글을 쓰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글쓰기는 결과적으로 가장 지독한 순간 빛을 발했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 발표되던 날인 17일. 모두가 도주를 선택하는 순간에도 유시민은 학교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실을 지키고 있던 그로서는 선택을 해야 했다. 군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에서도 그가 도주를 우선 선택하지 않은 것은 '창피함'이라는 감정이었다고 한다.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도망부터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도망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아직 도주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리고 입구에 묶어둔 쇠사슬을 끊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있던 친구들은 도주를 하는데 마침 걸려온 전화로 인해 유시민은 붙잡혔다고 한다.

 

사복을 입고 들어와 발길질을 하고 학생 유시민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민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것은 처음 본 권총에 대한 낯선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엄군에게 붙잡혀 두 달 동안 가족들에게는 생사도 알리지 않고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재능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5월 15일 서울역에 10만명이 모인 그날. 유시민은 무척이나 두려웠다고 했다. 21살 나이의 이 청년은 마이크를 들고 대오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외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 계엄군이 서울역에 진입하면 많은 이들이 사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신입생인 여동생과 미래의 아내 역시 그 과정에 있어 더욱 두려웠었다는 유시민은 맞지 않기 위해 조서를 쓰면서 자신이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잔인한 자의 입에서 나온 "글 잘 쓰지 않냐"는 말이 결과적으로 유시민이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게 만들었다.

 

진술서를 하루에 100장씩 쓴 이유도 맞지 않기 위해서라는 유시민에게 글쓰기는 그 당시 생존의 문제였다. 지독할 정도로 유시민은 두려움과 맞서 싸웠다고 했다. 맞지 않기 위해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라 하지만, 유시민의 삶은 그렇게 부끄러운 삶은 아니었다. 

"글을 쓰면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책속에 내놓지 않냐.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자료조사를 하고, 참고도서를 읽고 더 많이 알게 된다. 책 한 권을 쓰고 나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소모되는 게 아니라 차오르는 느낌이 생긴다"

 

'항소이유서'로 유시민이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린 그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책 속에 내놓는 과정에서 다양한 자료조사와 참고도서를 읽으며 많은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자신의 것을 내놓는데 그게 소비가 아닌 더 큰 채움이 된다는 사실에 책을 쓴다는 유시민의 답변은 그래서 흥미롭다.

 

군사법정에서 서서 과거로 돌아가도 동일한 행동을 하겠느냐는 군사법정 판사의 마지막 질문에 고민을 했다고 한다.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면 두려움 때문에 더는 민주화 운동에 나서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답할 수 있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부정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게 유시민의 삶이기도 하다.

 

풀려나기는 했지만 입영통지서를 받고 바로 입대를 해야 했던 유시민의 삶은 이후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수배를 받는 과정에서 그는 투쟁을 위해 다양한 글쓰기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것이 유시민의 유일무이한 소설이었고, 드라마 대본이었다. 

 

투쟁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그렇게 글쓰기는 청년 유시민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투옥된 그는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교도소에서 쓴 '항소이유서'는 세상을 깨웠다. 3일 동안 작성한 엄청난 분량의 항소이유서는 모두 자신의 머릿속에서 탈고까지 끝낸 후 작성했다고 한다.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도 아닌 곳에서 그가 만들어낸 인간을 초월한 그 글의 반향은 컸다. 그렇게 글쓰는 청년 유시민이 만들어졌다. 소설가로서 가능성도 보였던 그는 정치에 입문하며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질 예정이다. 

 

유시민은 당시 민주화 운동에 나선 이유는 인간적으로 풀어냈다. 누군가는 할 일이었다. 하지만 외면하면 항상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더욱 자신은 장남이 아니라 부담도 적었다고 했다. 결국 자신이 편하기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이기적인 이타심이 세상을 구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이야기했다.

 

군사법정에서 대기하던 그 지독할 정도로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나비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는 강렬했다. 모두가 차마 그 공포스러운 상황에 나서지 못하는데 제정원 신부(당시 수사)가 일어나 나비를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에서 청년 유시민은 놀랐다고 한다.

 

종교를 믿으면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인지 궁금해 제 신부 집을 찾았지만 그곳에는 '빈민운동의 대부'인 제정구 전 의원이 있었다. 종교를 믿어도 두렵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어 참는 것일 뿐이라는 제정구의 말에 유시민은 많은 것을 깨달은 듯하다. 이후 그의 행동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박정희 권력이 잔인하게 이어지던 1978년. 청년 유시민은 이기기 위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라 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자신을 위해 투쟁했다는 유시민은 중요한 발언도 더했다. 목적이 승리라면 이길 수 없는 싸움으로 인해 변신을 꾀하게 된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변절한 자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직접 나서면 거대한 권력도 무너트릴 수 있다는 자만심은 결과적으로 그 거대한 권력의 편에 서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싸우는 목적이 권력이기 때문에 손쉽게 권력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정확하다. 우린 수없는 변절자를 보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모르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유시민. 서울대 출신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었던 그는 '창피함' 때문에 그 평온함을 버렸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앞에 나섰던 그는 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시작했다. 여전히 뜨거운 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