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에 독특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제주의 문화
제주도는 삼다의 섬이라고 하지요. 바람과 돌, 그리고 여자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바람은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참으로 거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오랜 세월 모진 바람과 함께 해 온 제주의 자연, 그래서 더 애틋한 감정이 더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거친 제주의 바람의 흔적은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제주 전역으로 해안도로가 뚫리는 바람에 쉽게 해안의 경치들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 해안의 풍경은 오직 제주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풍파에 깎여나간 돌담들, 거친 바닷바람에 몸을 낮추고 살아가는 식물들, 나무들 또한 모진 바람에 견디다 못해 한쪽으로는 자라지도 못하고 가지가 기형적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며칠 전 제주에서도 거칠기로 소문난 구좌읍의 해안 길을 달리던 때였지요. 늘 보던 해안 풍경들 속에서의 나무 한그루,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지나칠 법도 한데, 차를 세워보라고 합니다. 동승하신 분은 제주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김원순 선생님입니다.
왜 차를 세우라 한 걸까? 분명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시려나 봅니다. 호기심 가득한 일행들을 데리고 바람에 뉘어 자라고 있는 나무숲이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합니다. 늘 보아왔고 의미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나무,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이러실까.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고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주 식으로 듬성듬성 돌담을 쌓아 둘러놓은 조그마한 공간 안에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오래 된 팽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팽나무의 가지는 하늘을 지붕처럼 완전히 덮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지만, 들어서자마자 예사로운 공간은 아니란 걸 직감했습니다.
수십 년 된 팽나무에 송악줄과 줄사철나무 줄기기 칭칭 감겨져 있고 줄기를 따라가 보면 하얀 무명천과 창호지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당(堂)’의 모습이었습니다. 신들의 고향인 제주도, 곳곳에 당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런 곳에 당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오래전부터 마을사람들과 고락을 같이 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곳에 신당이 있을 것이라 누가 알겠습니까.
동행한 김원순 선생님에 의하면, 이 신당의 이름은 ‘한동망애물해신당’ 즉, ‘남당하르방 중의또’라고 하는 신위를 모셔 놓은 곳이라고 합니다. 생계를 위해 바다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해녀들이나 어부들이 신위를 모셔놓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곳이라는 얘깁니다. 신위인 ‘남당하르방’은 동해왕국 강원도에서 오신 해신계의 손님이며, 옆 마을인 행원리에서 가지가 갈린 당이라고 합니다.
정월 15일경만 되면 제주사람들과 해녀들은 신과세를 지내러 많이 찾습니다. 이곳에 하얀 천이 걸려있고 제사를 지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과 얼마 전에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입니다. 하얀색의 천만 둘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이 신당은 바로 하르방 당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제주도 곳곳에는 할망당이 참 많은데, 할망당에는 오색의 천들이 둘러놓는다고 하는데, 이곳에는 오직 하얀색뿐입니다. 남자들이 사냥을 할 때 부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손목에 하얀천을 두르는 것처럼,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자신위를 뜻한다는 것이며, 하르방 당에는 하얀천을 걸어놓아 사냥을 갈 때 손목에 감고 가도록 배려 한다는 것입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진 제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고통이 함께했습니다. 신앙심을 갖고 신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주에 많은 신화가 존재하고 지금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은 나와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무사안녕이 아닐까요. 마을 중심에 존재하는 본향당을 비롯하여 해안가로 즐비한 해신당들, 관심을 갖고 지켜내야 하는 제주의 유산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