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의 악의적인 경제 보복이 국내에 상주하는 토착 왜구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여념이 없는 자들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이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명확하게 우리 사회의 토착 왜구 실체를 확인하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여러 시사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 드러났듯,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일본어판을 통해 악의적인 가짜 뉴스를 퍼트렸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일 극우 매체들은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아베는 두 신문의 가짜 뉴스를 앞세워 한국을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들 언론은 언론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정부 비판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언론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조차 망강한 채 '험한 뉴스 장사'를 하는 이들을 어떻게 언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매국을 당당하게 하는 언론이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수치이자 아픔이다.
일제 강점기에도 친일을 해왔던 신문의 정체성은 달라질 수 없다. 그 역사성을 가지고 여전히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여야 하고, 지금도 식민지처럼 인식하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과연 정상인가. 친일파 청산을 막고 그들을 중용한 이승만을 국부로 모셔야 한다고 주창하는 자들의 인식 역시 동일하다.
이명박근혜 시절 역사 교과서를 왜곡해 국정 교과서 정책을 펴던 자들은 친일과 독재 찬양을 일상화 했다. 술만 마시면 일본 군가를 불렀다는 박정희를 찬양하고 친일파들을 구해준 이승만을 국부라 칭송하며, 식민사관을 퍼트리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작성해 전국 학교에 배포하겠다는 그들의 야심은 경악할 수준이었다.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일부 학교에서는 이 매국 교과서를 받기도 했다. 결국 무산으로 그쳤지만 토착 왜구들이 얼마나 집요하게 식민사관을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그렇게 지독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두고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상업적 매춘부라는 발언을 토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고려대 정안기 교수 역시 일본군 위안부가 큰돈을 벌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식민사관을 퍼트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경악할 수준의 발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토착왜구들이 상당히 많이 퍼져있다는 사실을 우린 알 수 있다. 국민의 대변인이라 자처하는 국회의원 집단들 중에서도 식민사관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은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기록되어 있다.
전범기업과 가해자를 대변하던 무토 대사를 대표적인 '친한파'라고 소개하며 그의 입을 통해 현재의 아베 경제 보복을 두둔하는 인터뷰를 실은 중앙일보는 정말 무토가 '친한파'라고 생각하는가? 전범기업을 대변하는 자이자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책까지 낸 자를 '친한파'라고 정말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한국경제신문은 유명환 전 장관 인터뷰를 통해 한일 관계를 언급했다. 유명한이 누구인가? 전범기업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의 고문을 맡아, "대법원 판결을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 의견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자가 바로 유명환 전 외통부 장관이다. 이런 전력을 모르고 기사를 냈을까?
악의적으로 무토와 유명환 전 장관을 앞세운 두 신문의 의도는 너무나 명확하다. 일 아베의 편에 서서 한국의 강경한 입장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이들은 과연 어느 나라 신문인가?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저항도 하지 않고 그런 부당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논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 과연 대한민국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국적을 떠나 언론으로서 가치가 있는가.
우리 사회 토착왜구들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 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한 정상적인 대한민국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일 아베의 경제보복은 우리 사회의 토착 왜구들에 대한 관심을 다시 키우고 있다. 일 불매운동만이 아니라 토착 왜구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역시 더욱 뜨거워져야 한다. 극일을 통해 단 한 번도 청산의 역사를 가져보지 못한 우리가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할 기회가 지금 주어진 셈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