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회를 남긴 <블랙독>은 많은 변화를 예고했다. 15화에서는 세 팀이 나뉘어 각자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건 마지막을 위한 정리 수준의 만남이었다. 서로에게 떠나가는 이들이 마지막 만찬을 즐기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3학년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 황보통은 자퇴서를 썼다. 더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늘과 성순은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1학년 담임이었던 성순과 보통, 3학년 담임으로 만나게 된 하늘과 보통. 모두 사연들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에게는 또 다른 엄마인 국수집 영숙을 다치게 한 이가 바로 보통이었다. 그래서 화도 많이 냈던 보통이 그렇게 자신이 담임을 맡은 반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하늘은 보통에게 든든한 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이카로스를 두고 벌어진 교내의 논란 속에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보통은 난동자로 오인 받았다.
한번 보통에게 세겨진 낙인은 그렇게 지워지지 않았다. 누구도 믿어주지 않고, 자신을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는 학교는 더는 보통에게 무의미한 공간일 뿐이었다. 그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보통의 판단이었다.
"믿어주지 못해 미안해"
1주일 동안의 자퇴숙려기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하늘은 보통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왜 보통을 믿어주지 못했는지에 대한 자책이었다. 학생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교사다. 그런 교사의 자리에서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쌓이는 것 역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은 성과급으로 S등급을 받았다. 대치고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이었다. 기간제 1년 차에 이카루스를 맡아 한국대 의대를 보낸 성과만으로도 최고였으니 말이다. 이와 관련해 다른 교사들의 불만은 커졌다. 하늘 때문이 아니라 이런 성과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고민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활발하고 열심히 수업하는 도연우마저 A등급에 머문 상황에서 교사들 사이에서 불만은 이카루스에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학부모들까지 찾아와 이카루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성순이 앞장서게 되었다. 교감이 된 수호의 도움을 받아 교장에게 이카루스 폐지 요구를 하게 되었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직접 투표를 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이카루스 학생 일부도 폐지에 손을 들 정도로 절대적인 숫자는 이카루스 폐지에 동조했다. 그렇게 1년 만에 이카루스는 대치고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원하던 한국대 의대 합격생을 배출하기는 했지만, 다른 학생들의 성과는 더 떨어진 이런 구조가 지속될 수는 없다는 모두의 고민 결과였다.
보통은 웹툰 작가가 되려 한다. 그래서 배달일도 했다. 배달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는 보통은 보통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없는 보통의 집에 아버지는 매사 무기력하다. 보통의 아버지는 결국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한다며 자퇴와 관련해 아들의 의견에 동의했다.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폭력을 사용하거나 억압하지 않는 보통의 아버지는 어쩌면 가장 현명한지도 모른다.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아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중요하니 말이다. 보통은 그렇게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늘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을 학교에 잡아두는 것이 옳은 것인지 놔주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말이다. 그렇게 하늘은 보통이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어디까지 관여하고 잡을 수 있을지 교사인 하늘도 알 수는 없다. 성순이 이야기를 하듯 자기 아들도 알 수 없는데 말이다.
하늘은 성순과 보통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쌓인 오해들을 풀어내기 위함이었다. 하늘이 만든 이 자리는 그렇게 다양한 형태의 자리들로 확장되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 고향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영숙은 비 내리고 손님도 없는 그날 막걸리에 파전이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절실했다.
자신이 떠난다는 사실을 밝히지도 않고 가게가 나간 후 하늘에게 심야영화보자고 보채던 영숙. 그렇게 하늘과 단둘이 데이트를 하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영숙. 그런 영숙이 뒤늦게 발견한 하늘 부모는 집으로 모시지 않았다고 딸을 타박했다. 그렇게 비 오는 그날 국수집을 찾았다.
하늘이까지 불러 마치 가족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국수집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교사들 성과급과 관련해 실망이 컸던 연우를 위해 명수는 술자리를 제안했다. 단순히 성과를 낮게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학교에 재미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열정적이었던 연우는 이제 막 매너리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항상 그 자리에서 일만 하다보면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를 잘 해결하면 다시 재충전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엉망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대인들에게는 누구나 한 번은 찾아오는 번아웃 상태를 맞은 연우에게는 고비다.
오해는 풀리고 서로를 위로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눈 성순과 보통. 여전히 그 매너리즘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는 명수와 연우. 딸 같은 하늘 곁에서 국수집을 하며 살던 영숙은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통과 영숙은 사라졌다.
이야기는 갑자기 흘러 하늘이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성숙은 보통과 만난 이후 진학반을 그만뒀다. 최소한 1년 동안은 진학반 교사를 지켜주려고 했던 성숙은 모든 것을 놨다. 보통을 만난 후 변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렸던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할 것이다.
하늘은 다시 대치고 시험을 봤다. 다른 학교를 갈 수 있는 선택지도 많았지만 하늘은 대치고가 좋다. 자신의 첫 학교이자 좋은 이들이 함께 하는 그곳에서 교사로서 꿈을 실현하고 싶다. "어디까지 해야 하나요?" 아이들 인생을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을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하늘은 자신을 구해준 김영하 선생님과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마지막 한 회를 남긴 <블랙독>은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할지 궁금해진다. 진정한 교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늘의 성장기가 어떻게 확장될지도 궁금해진다. 교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수없이 반문하게 만드는 <블랙독>은 이제 마지막 한 번의 이야기만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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