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통신업체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이 1,300억 달러(약 144조원)에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통신업체 보다폰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합작회사 버라이즌와이어리스의 지분 45%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10년 넘게 이어졌다 중단되기를 반복해 온 협상이 마침내 성사된 것이다.
버라이즌 Verizon 1,300억 달러 에 보다폰과 지분정리
버라이즌와이어리스가 버라이즌커뮤니케이션의 100% 자회사가 되는 이번 M&A딜은 또다른 보다폰 딜(1999년 1,720억 달러에 독일 무선통신업체 만네스만 인수)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버라이즌은 주식(602억 달러)과 현금(589억 달러) 외에 버라이즌이 보유한 보다폰 이탈리아 사업부 지분 23%와 어음 50억 달러 등을 합친 100억 달러 등으로 매입 대금을 지불할 예정이다.
시장조사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이번 거래에 투입되는 현금은 버라이즌와이어리스의 본사가 있는 뉴저지 주정부 예산의 거의 두 배로 M&A 역사상 최대 규모다. 2008년 벨기에 맥주업체 인베브가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앤하우저-부시를 인수할 당시 투입했던 약 500억 달러도 능가하는 수치다.
로웰 매커덤 버라이즌 회장 겸 CEO는 “이번 거래로 모바일 자산을 늘릴 수 있게 됐다”며 “지난 10년간 우리 비즈니스 전략도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는 무선∙모바일 부문에 계속해서 투자하고 있으며, 현재 회사가 수익을 내고 있는 부문도 바로 무선∙모바일”이라고 말했다.
보다폰은 이번 거래로 미국 정부에 내야할 세금만 50억 달러라고 밝혔다.
이같은 엄청난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번 딜이 1억 명의 버라이즌 가입자에게 미칠 영향은 미미하며 반독점 규제당국의 조사도 (거의) 받지 않는다. 버라이즌이 이미 합작회사 버라이즌와이어리스의 지배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거래는 양사 주주들과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의 승인과 보다폰 이탈리아 사업부와 관련해 EU 인수합병허가를 받아야한다. 버라이즌은 이듬해 1분기에 거래가 완료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대대적인 자금조달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월가 은행들에겐 횡재라 할 수 있다. 이번 거래에 자문사로 참여하고 자금조달을 돕는 은행과 로펌들이 받게 될 총 수수료는 최대 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매커덤 회장은 2011년 취임 후 직면해 온 난해한 전략적 과제를 풀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버라이즌의 성장과 향후 전망은 무선∙모바일 부문에 의존하는 분위기다. 이 부문은 지난해 회사 전체 매출(1,160억 달러)의 3분의 2를 창출했다. 하지만 버라이즌은 버라이즌와이어리스가 보다폰과 합작회사이다보니 벌어들인 현금과 수익을 전부 자기몫으로 주장할 수 없었다.
일례로 지난해 버라이즌은 순이익 106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그 중 97억 달러는 보다폰 몫이어서 실제로 버라이즌 수중에는 8억7,500만 달러만이 남았다.
매커덤 회장은 올 초부터 공개적으로 버라이즌와이어리스를 인수할 의향과 여력이 있음을 시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프랜 샤모 버라이즌 최고재무책임자(CFO)도 버라이즌와이어리스 인수에 따른 세금 폭탄을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했다고 밝혔다.
양측의 협상은 올 들어 내내 이어졌고, 지난달 매커덤 회장과 비토리오 콜라오 보다폰 CEO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만나 조건을 논의하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금리 상승도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을 굳히는 데 도움이 됐다.
보다폰은 이번 거래로 생기는 수십억 달러를 어떻게 써야할까라는 전략적 과제에 직면했다. 월요일 보다폰은 이번 거래에서 받게되는 버라이즌 주식 일체와 현금 239억 달러를 분배함으로써 840억 달러를 주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에게 직접 분배할 현금 규모를 이보다 적게 예상했던 다수의 시장관측통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식이었다.
보다폰은 향후 3년간 60억 파운드(93억 달러)를 네트워크 및 서비스 부문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남는 현금 약 200억 달러는 6월 30일 기준 387.8억 달러인 부채를 갚는데 쓸 계획이다.
3월 31일 마감한 회계연도에 버라이즌와이어리스가 보다폰에 안겨준 이익은 90억 달러 이상으로 보다폰의 조정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장부상으로 그렇단 얘기이고 대부분의 현금은 버라이즌와이어리스에 묶여있었다. 버라이즌와이어리스는 올 초 소유주들에게 70억 달러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6월 보다폰은 100억 달러에 독일 최대 케이블업체 카벨도이치란트를 인수하며 무선 사업 너머로 사업을 확장할 거라는 점을 암시했다.
보다폰 역시 인수 타겟이 될 수 있다. 보다폰 인수에 관심있을 회사 중 하나는 AT&T다. 투자자들과의 회의에서 랜달 스티픈슨 AT&T CEO는 유럽 대륙에 접근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유럽 통신업체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언급한 내용으로 볼 때 보다폰에 관심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600억 달러의 부채금융(부채를 통한 자금조달)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전망이다. JP모건과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바클레이즈 등 대형 은행 네 곳이 향후 12~18개월간 보다 영구적인 자금조달수단을 찾을 때까지 브릿지론을 제공할 예정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각 은행이 필요한 자금을 똑같은 액수로 나눠 담당하게 된다.
총액 가운데 약 200~300억 달러는 나중에 회사채로 커버할 수 있을 것이며, 전체 자금조달에서 회사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클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채 매각은 현재까지 사상 최대 회사채 매각으로 기록됐던 올 4월 애플의 170억 달러 회사채 매각을 가볍게 넘어서는 것이다. 당시 은행가들은 애플이 500억 달러 이상어치의 주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년만에 처음으로 채권시장 문을 두드리긴 했지만, 당시 애플은 부채가 없었으며 회사채 발행 시점도 시장이 연준의 양적완화 종료 소식에 움츠러들기 전이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버라이즌 채권에 관심을 드러냈고 일부는 새로 발행될 버라이즌 채권이 기존 채권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될 거라고 예상한다. 투자자들은 지금처럼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추가 수익의 기회를 갖게 된다. 이처럼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됨으로써 버라이즌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될 수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까진 투자 등급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버라이즌은 인수 완료 후 1, 2년동안 급속히 부채를 상환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부채가 많으면 전략에 유연성도 떨어지고 경제상황이 갑자기 나빠질 경우 리스크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도 고려되고 있다. 2004년 이래 버라이즌의 미국 시장 연 가입자 증가율은 2%로 둔화됐다. 덩치가 작은 경쟁사 스프린트와 T모바일은 진보된 네트워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갈수록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며 버라이즌의 미래 가치를 잠식할 수 있는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콜라오 보다폰 CEO는 이번 지분 매각을 보다폰이 미국 시장의 성장 전망을 비관한다는 신호로 해석해선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보다폰과 버라이즌 양사와 주주들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다.”
버라이즌은 이미 빠른 LTE 통신망을 출시한 만큼 앞으로도 1, 2년은 경쟁사들보다 앞서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버라이즌 가입자의 94%는 약정에 묶여있어 다른 이통사로 옮겨갈 가능성이 낮다.
버라이즌 주가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이번 거래에서 매입 대금으로 지불하는 주식은 주당 47~51달러선에서 고정된다. 버라이즌이 필요한 자금조달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계약파기위약금 조항도 넣었다.
구겐하임증권과 JP모건, 모건스탠리, 바클레이즈, BOA, 전 모건스탠리 은행가 폴 J. 터브먼, 로펌 와치텔 립튼 로젠 앤 카츠와 맥팔레인 등이 자문을 제공했다. 로펌 드베브와 앤 플림튼이 자금조달과 관련해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UBS는 보다폰에 자문을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