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Bang’‘Bum’‘Sin’ 등
직장 내 조롱·학교선 왕따, 불쾌할 땐 당당히 항의해야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한인 방모씨는 지난해 미국 대기업에 임시직으로 근무하던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불쾌감을 떨칠 수 없다.
일부 직원들이 자신의 성씨인 ‘방’의 영문표기 ‘Bang’을 놓고 지속적인 조롱을 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놀리는 듯한 말투로 ‘뱅~뱅~’이라고 하는 등 이름이 아닌 성을 두 세 번씩 반복적으로 부르곤 했다. 결국 방씨는 당시 변호사의 조언을 얻어 회사 측에 정식으로 항의를 했고, 회사는 관련 직원 3명과 상급자에게 정식 사과를 지시해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방씨는 “비록 사과는 받았지만 당시만 떠올리면 화가 난다”며 “무엇보다 내 아들 녀석도 같은 놀림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버지로서 죄책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인들이 미국에 살면서 한국 이름의 영어식 표기나 발음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한 고초를 넘어 이름 때문에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인종차별적인 모멸감으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까지 발생하면서 사회생활의 장애가 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어로는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영어식으로 발음하거나 쓰면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실례로 한국 이름 글자를 영어로 쓰거나 읽을 때 ‘빨다’라는 의미를 지닌 ‘Suck’으로 들리는 ‘석’이나 엉덩이나 놈팡이를 뜻하는 ‘Bum’(범), 죄를 뜻하는 ‘Sin’(신), 아프다는 의미의 ‘Sick’으로 들리는 ‘식’, 비속어로 남성 성기를 뜻하는 ‘Dong’(동) 등이 들어가는 이름 글자를 가진 한인들은 알게 모르게 이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의 사례에서 언급된 방씨처럼 직장 왕따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고, 또 어린 학생들은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곤 한다.
수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름에 ‘Suk’를 사용하는 한인 남성이 유틸리티 회사 고지서에 자신의 이름이 ‘Suck’으로 ‘c’가 중간에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돼 항의를 했다.
그런데 이후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다음 달 고지서에는 Suck에서 첫 글자 S를 F로 바뀌어, 자신의 이름이 ‘F***’이라는 더 심각한 욕설이 돼 있었던 것이다.
꼭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유씨 성을 가진 한인이 70년대 초 이민 올 당시 여권의 철자가 ‘You’로 표시되는 바람에 미국에서 그대로 이름을 쓰면서 난감한 상황을 맞는 경우도 있고, 엄씨 성을 가진 한인이 미국인들에게 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 상대방이 이를 말을 머뭇거릴 때 하는 ‘Umm…’으로 알아들어 곤혹스런 경험을 했다는 한인도 있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한인의 영문이름 표기가 어떻게 돼 있든 그 어떤 누구도 이를 놀리거나 조롱할 권한은 없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불쾌감을 느낄 경우 당당하게 항의를 하고, ‘하지 말라’는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당한 요구에도 시정이 되질 않는 경우 직장에선 상급자나 인사과에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항의를 하고, 학교에선 학교장 등에게 따질 수 있다.
정홍균 변호사는 “이런 절차 가운데 혹시라도 피해 한인이 추가 불이익을 받으면 불이익을 가한 회사나 단체는 더 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언어와 문화 차이에서 바탕이 된 만큼 ‘인종차별’로 비화돼 이에 맞는 손해배상을 해야 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