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저학력,저소득 백인들의 분노 기반
미국 정치권의 이단아로 취급 받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트럼프는 중산층 이하 백인 계층 내면에 자리한 민주당 8년 집권의 염증을 ‘반 이민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포장, 표로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부동산 개발로 부를 이룬 성공스토리를 내세워 엘리트 정치인을 물리쳤다는 점에서는 1828년 ‘대중 민주주의’를 내세워 당선된 평민 출신 앤드루 잭슨(7대 대통령)과 비견된다.
반(反) 엘리트주의
지난해 6월 트럼프가 대권 도전을 선언했을 때 당선 가능성은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 경선에서 15명의 엘리트 정치인을 물리쳐야 했고, 본선에 올라서도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지닌 힐러리 클리턴을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년5개월 뒤 대권을 거머쥐게 된 건 약점이던 ‘정치 아웃사이더’, ‘반 엘리트’가 강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투표일 전날 유세에서 “내가 낙선하면, 워싱턴의 정치 협잡꾼들이 다시 미국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표심을 자극했다.
엘리트 주류 언론이 민심 포착에 실패한 것도 트럼프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대도시에 기반을 둔 주류 언론과 여론 조사기관은 대선 전날까지도 클린턴의 3~4%포인트 우위를 전망했다. 엘리트 정치인과 달리 때로는 남을 비하하고 거친 말을 내뱉는 등 보통 사람의 어법을 사용한 것도 결과적으로 성공요인으로 꼽히게 됐다.
강한 보호무역주의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던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를 석권할 수 있었던 것은 ‘강경 보호무역주의’흐름에 제대로 편승했기 때문이다. ‘러스트 벨트’가 미국 제조업의 중심이던 시절 이곳에서 일하는 백인 근로자들은 대규모 산별노조 조합원으로 민주당의 핵심 지지계층이었다. 그러나 저임금을 찾아 멕시코와 중국 등으로 공장이 이전되면서 이들 근로자들의 대규모 실직 사태에 놓이거나 임금 하락을 감수해야 했다.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외국에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아 오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이들의 표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
전통적으로 미국은 주기적으로 ‘간섭주의’와 ‘고립주의’ 대외정책을 오가는 경향이 뚜렷하다. ‘간섭주의’는 경제적으로 외국에 비해 우월한 상황일 때 나타나는데, ‘자유진영 수호자’를 자처하던 1950, 60년대 미국은 경제력도 세계 초강대국이었다.
반면 ‘고립주의’는 그렇지 않을 때 유행했다. 월남전 패배가 확실해졌을 때 당선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에게’라는 구호를 내건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지표경기만 좋을 뿐 여전히 최악인 체감경기를 고리로 미국은 ‘남을 도와 줄 처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조달러가 넘는 전비를 퍼붓고도 대 테러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먹혀 드는 환경을 조성했다,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
미국에서는 금기시되지만 트럼프 승리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백인 우월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순화해서 표현하면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를 겨냥한 ‘반 이민주의’로도 불리지만, 미국 사회의 70%를 구성하는 백인 중 상당수는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 기간 중 ‘멕시코 이민자는 강간범’이라고 주장하고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의 범죄 경력을 부풀려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요컨대 트럼프는 비 백인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미국 사회 주류 지위에서 떨려난다는 백인 계층의 불안감을 자극, 예고했던 대로 숨은 표의 분출을 실현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의 낙승이 예상됐던 플로리다에서 뚜껑을 열자 정반대 현상이 펼쳐진 것도 히스패닉의 조기투표 참가율이 높다는 소식에 자극 받은 백인들이 8일 투표소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